Search This Blog

Friday, August 22, 2014

치료자 예수님: 친구 관계

치료자 예수님: 친구 관계

1. 친구들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 ( 9:1-8, 2:1-12, 5:17-26)

ㄱ.  하루는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 예루살렘과 유대와 갈릴리 촌에서 찾아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 앉았고, 사람이 많아 밖에 까지 찼다.
ㄴ.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침상에 메고 와서 지붕의 기와를 벗기고 예수님 앞으로 병자를 달아 내리었다.
ㄷ.  예수님은 그들의믿음을 보시고, 병자에게 사함을 받았다 하시고 병도 고쳐 주시었다.

2. 본문에서 찾아 보는 교훈

ㄱ.  예수님이 사역하신 고을은 가버나움이라는 갈릴리 바다 북서쪽에 위치한 곳으로 예수님의 동네라고 표현되고 있다 ( 9:1).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 배척을 받으신 ( 4:16-31),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에서 사시며 사역을 많이 하셨는데 ( 4:13), 이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였다 ( 4:14-16, 9:1-2).

·         가버나움이란 말은 나훔 (short for 느헤미야) 마을 (Kfar Nahum)’이란 뜻이다.
·         나훔이란 말의 어원은 나함이라는 말인데, 뜻은 숨을 크게 쉬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에게 적용되는 동사로는 한탄하시다’, ‘뜻을 돌이키시다’, ’후회하시다’  (be grieved, relent, repent)라는 말로 난역이 되었고 ( 6:6, 32:14, 삼상 15:11), 사람에게 적용되는 동사로는 위로하다’, ‘안위하다’ (comfort, be compassionate) ( 40:1, 23:4)라고 번역되어 있다.
·         특히 40:1 말씀은 메시야가 오셔서 자기 백성을 위로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는데, 그렇게 오신 예수님이 바로 위로의 마을가버나움에서 사역하신 것이었다.

ㄴ.  예수님은 안심하라, 사함을 받았느니라하시고, 후에 일어나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셨나?

·         유대인들은 생각하기를 모든 병과 고통은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n  참고: 9:1-2 – 나면서 소경된 자를 보고, 제자들은 그가 소경된 것이 자기의 때문인지 부모의 때문인지 물었다.
n  궁극적으로 사람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병과 고통으로 괴로와 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죄의 문제와 더불어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해결하시기 위해 오셨다 ( 53:4-5). 그리고 천국에서는 다시 애통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나 사망이 없을 것이다 ( 21:4).
n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누가 병을 얻거나 해를 당하거나 하는 것이 그런 것을 당하지 않는 자보다 죄가 많아서가 아니고 ( 13:1-5), 오히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고 ( 9:3), 또는 예수님을 믿게 하려고 ( 11:15,42) 병이 주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         본문의 중풍병자도 자기 병으로 인한 죄책감이 있었을 것이다.
n  그런 죄책감 같은 마음의 중압감을 가지고는 몸의 병이 낫기도 어렵다.
n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의 병을 먼저 고치신 것이다예수님의 말씀: “안심하라,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을 믿을 , 말씀은 이미 이뤄지고 있었다.
n  그리고, “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명하실 , 병자는 예수님 말씀대로 일어나 나갈 있었다.

·         바리새인과 교법사들도 사람의 병은 무슨 중한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n  그런데, 예수님은 사함을 받았느니라하시며 충격적이고 도전적인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 밖에는 죄사함의 권세가 없는데 ( 43:25).
n  그리고는 (율법사들이 때문에 생겼다고 믿는) 병을 고치심으로, 예수님에게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증거하셨다.

ㄷ.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데려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고쳐 주셨다.
·         사람이 구원받고 멸망받는 것은 각자 자기의 죄가 해결되었는가로 결정된다 ( 31:29-30, 18:1-32).
·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중보기도해야 하고 (딤전 2:1), 또한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하셨다 ( 5:15-16).
·         역사상으로, 주위의 사람의 기도로 회개하고 주님에게로 돌아 사람의 예는 많이 있었다. :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로 어거스틴은 33세에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3. 올바른 친구는?

ㄱ.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로 여기시고 하나님의 비밀을 알리셨다 ( 15:15). 친구는 복음의 소식을 나눈다 (고넬료의 : 10:24).

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데 (딤전 2:5), 친구는 친구를 위해 변백하여야 한다 ( 16:20-21) – 하나님께 중보기도함 (딤전 2:1).

ㄷ.  친구는 충성된 권고와 통책을 하여 (회개하도록) 마음에 찔림을 있다 ( 27:6,9). 그러나 정죄나 이간의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 16:28, 17:9). 그래서 친구는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는, 칼가는 도구와도 같다 ( 27:17).

ㄹ.  친구는 친구의 슬픔( 35:14) 기쁨을 같이 한다 ( 12:15)
·         입다의 딸과 슬픔을 나누며 달을 애곡한 친구들 ( 11:37-38).
·         좋은 친구는 친구의 위급한 때에 돌아보고( 17:17, 27:10) 그의 필요를 공급한다 (: 27:3)
·         친구와 나누는 기쁨의 가장 것은 예수님을 만난 것이고 ( 3:29), 잃었던 자를 찾은 것이다 ( 15:6,9)

ㅁ.  가장 친구의 사랑은 친구를 위해 목숨이라도 내어 놓는 것인데 ( 15:13),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위해 가장 친구의 사랑을 베푸셨다 ( 5:7-8).
·         요나단의 다윗을 위한 사랑 (삼상 18:1-3, 20:17-42)

4. 누구에게 내가 친구인가?

ㄱ.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 10:25-37)
·         율법사는 이웃이 누구오니이까?”라고 물었으나, 예수님은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 “누가 이웃이 있겠는가?”)하는 것이었다.
·         마찬가지로, 내가 누구에게 친구가 있는가의 질문이 누가 내게 친구의 사랑을 베풀 있는가 하는 것보다 적당한 질문이다. 당대에 천대받던 세리나 이방인들보다 승한 사랑을 베풀라고 가르치신다 ( 5:46-47) – 원수에게도 친구의 사랑을 베풀어서 (벧전 3:9, 12:17). 하나님은 모세와 ( 33:11) 아브라함을 ( 41:8, 2:23) 친구라 부르셨고, 예수님은 제자들(우리 포함) 친구라 부르셨는데 ( 15:15), 또한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 칭함 받으심을 마다 않으셨고 ( 11:19), 불평하는 ( 20:13), 예복이 없어서 쫓겨 ( 22:12-13), 심지어 멸망의 자식 가룟 유다에게 까지 ( 26:49-50) 친구라 불러 주시었다. 돌아 오지 않을 죄인까지 오래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ㄴ.  어떻게 친구를 만드는가?
·         물론 첫째는 복음의 진리, 예수님을 나누는 것이다 ( 15:15, 10:24)
·         그리고, 세상에서 내게 맡기신 재물을 가지고 친구를 사귀라고 하신다 ( 16:9). 재물로 친구를 만들기가 수월하게 놓으셨기 때문이 아닐까? ( 19:4,6, 14:20).

·         그러나, 세상의 풍습을 따르는 세상의 친구가 되지 말고, 세상 사람이 나와 같이 하나님의 친구가 되게 해야 것이다 ( 4:4).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