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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May 5, 2014

고린도전서 6장

고린도전서 6

1. 성도 간의 법정 소송에 관하여 (:1-8)

ㄱ.  소송에 관한 문화적 배경
n  유대인들은 민사, 형사적인 일이 생겼을 때, 촌이나 도시의 장로들과 제사장 앞에 그 일을 의뢰하여 판결을 받았다 (: 19:11-12, 21:1-9, 18-21, 22:13-21, 25:7-10, 20:1-4, 4:1-12). 유대인의 관례는 유대인이 이방인의 법정에 고소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n  헬라인 중에는 점진적 소송의 제도가 발달하여, 개인을 대표하는 중재인 (현대의 변호사), 제 삼의 중재인 (현대의 재판관), 공동 중재인회 (60세 이상의 시민들로 구성), 201인 배심원, 401인 배심원 (소송의 경중(輕重)에 따라) 제도 등이 있었다. 헬라인들은 소송을 하거나 또는 다른 사람의 소송을 방청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였다.
ㄴ.  바울의 책망
n  불신자 (“불의한 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자”,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형제를 송사함을 책망함 (:1,4,6)
n  신자는 차라리 불이익을 참고 당하는 것이 낫거든, 오히려 형제에게 해를 가하려 함을 책망함 (:7)
ㄷ.  왜 불신자 앞에 송사하면 안 되는가?
n  고소를 받아 다른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지 못해 법정에 서는 것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의 예 21:27-26:32, 28:17-19).
n  사회에 사법제도가 있어서 법관과 관원이 법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나쁘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 13:1-4). 단지 성도 간의 일은 교회 안에서 평화스럽게 해결하는 것이 좋다 (:5).
·         그러나, 중세 때에는 이 구절을 인용하여, 교회의 bishop들이 정치적인 권세를 남용하였다. 성직자의 본 의무는 말씀의 사역과 기도임을 잊고 ( 6:4).
n  그러나, 신자가 다른 신자를 불신자 앞에 송사하는 것이 잘못인 이유는
·         교회의 이름과 명예를 회손하고, 세상 앞에 웃음거리가 되게 하여 (:4) 복음 전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
·         앞으로 성도에게 주실 심판권에 대해 망각하는 것이다 (:2-3)
-          예수님과 심판석에 앉을 것이다 ( 19:28, 22:29-30, 2:26-27, 2:5-6, 8:17, 딤후 2:11-12, 7:22)
-          성도들은 타락한 천사들도 심판할 것이다 (벧후 2:4, 6, 24:21, : 1:8).
ㄹ.  차라리 불의를 참고 당하라 (:7).
n  불의를 이기는 길은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 5:43-48, 12:17-21, 25:21-22).
n  소송하는 저의는 상대방에게 해를 가하여 복수하고자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복수하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 32:35, 12:19).
n  단지, 신자라고 해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규모있게 하고, 사랑의 결핍이 없이 한다면. ( 16:37, 22:25)

2. 고린도 성도들에게 (과거에) 있던 불의 (:9-11)

ㄱ.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9). 불의의 모습을 당시 고린도에 만연된 (5:10-11) 여러 죄악으로 보여주고 있다.
n  음란, 간음, 탐색, 남색
n  우상 숭배 도시 언덕에 Aphrodite의 신전이 있었다.
n  도적, 탐람, 토색
n  술 취함 당시 헬라인들은 아침식사(akratisma)를 술에 담군 빵(akratos, ακρατος)을 먹음으로 시작하여, 하루 종일 음료수로 포도주를 마시는 생활을 하였다.
n  후욕
ㄴ.  이런 불의의 모습은 과거로 족하다 (벧전 4:3). 온전한 회개가 있었다면, 이런 것에서 돌이켜야 한다 (벧전 4:2).
ㄷ.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11, 1:21-22). 그러므로, 이제는 더러움과 죄악에서 멀리 하여야 한다.

3. 성도의 자유와 음행에 관하여 (:12-20)

ㄱ.  성도의 자유와 절제(:12)
n  당시의 헬라인들은 육체를 천시하였다. 이런 육체에 대하여 두 가지 대표적인 학설이 있었는데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Epicureanism and Stoicism)의 학설이었다 ( 17:18). 전자는 육체로 무엇을 해도 상관 없으니 그 욕망를 마음껏 만족시켜도 좋다는 것이었고, 후자는 육체나 본능은 철저히 억제하여 금욕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n  그리스도 안에서 있는 자유에 대하여 ( 8:32, 고후 3:17, 5:1) 들은 고린도 교회는, 그 자유에 대하여 잘못 이해하고 육체의 소욕을 채우는데 쓴 것 같다 ( 6:15, 5:13, 벧전 2:16). 그리고 음행에 대하여 자유롭게생각하였다. 이방인으로 신자가 된 사람들 중에 음행은 아주 만연했던 것 같다 (: 15:19-20).
n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죄를 져도 되는 자유가 아니고 ( 6:15),  죄에게 종노릇 하는 데서 벗어나는 자유( 6:6), 죄로 인해 사망의 주장을 받는 데서 자유( 6:9), 하나님의 법도에 순종하여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 자유( 6:16-22)이다.
n  성도가 자유하나 (“모든 것이 가하나”), 그 자유에는 절제가 있어야 한다 (:12).
·         자유는 공동의 유익을 위해 쓰여야 한다 (고전 10:23-24, 8:8-9, 14:13-17).
-          사랑으로
-          형제가 근심하지 않게, 넘어지지 않게
·         우리가 자유롭게 사용해야 할 것에 오히려 지배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12). (: 술취함). 이 세상의 것은 잠간 있을 이생에서 필요에 맞추어 적절하고 규모있게 사용할 것이다 (:13)
ㄴ.  성도의 자유는 음행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13-20)
n  하나님께서 배를 위해 음식을 주셨듯이, 음란을 위해 몸을 주신 것이 아니다 (:13).
n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인데, 우리의 몸도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그 영광에 참여할 것이다 (:13-15, 3:1-4). 그럴 몸을 죄의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n  교회가 그리스도와 연합함은, 신부가 남편과 연합함과 같은데 ( 5:30-32), 영으로 하나가 되고 (:17), 또 몸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 2:24, 5:31-32). 그런 몸을 음행으로 창기의 지체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15-16). 음행은 그리스도의 몸을 더럽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혼한 사람이 혼외 간음을 하는 것도 죄이지만, 성도라 하는 자가 음행하는 것은 교회의 남편이신 그리스도에게 더 큰 죄를 범하는 것이다.
n  모든 죄가 다 몸을 더럽히지만 ( 15:18-20), 음행은 특별히 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는 것이다 (:18).
n  우리의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전이므로 ( 8:9-11, 고후 6:16, 딤후 1:14) 음행으로 더럽혀서는 안 된다 (:19).
n  우리의 몸은 예수님의 보혈이란 가장 귀한 값으로 산 것이다 (벧전 1:18-19, 20:28, 고후 7:23). 그러므로 우리의 몸을 우리의 정욕을 위해 남용하지 말고,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하여 살아 ( 14:8-9),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20).
·         사람의 생명을 온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고 ( 16:26, 8:36, 9:25), 하나님 자신의 피 값으로 사신 것은 성도 외에는 아무 피조물도 없다.

·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한 부분이 아니고, 우리의 온 영과 혼과 몸을 온전히 흠없게 보전하시는 것이다 (살전 5:23, 26:9, :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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