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장 (2) – 여정 변경에 대한 변증 (1:12 – 2:4)
1. 고린도교회가 바울을 비난함 (1:15-17)
ㄱ. 바울의 본래 여정 계획은 고린도교회를 두 번 더 방문하는
것이었다. 에베소에서 고린도에 갔다가 마게도냐를 방문하고, 다시 고린도에
갔다가 거기서 유대로 갈 계획이었다 (:15-16). 아마도 이런 계획을 고린도교회에 알렸었던 것 같다.
ㄴ. 그런데, 바울은
그 계획을 바꾸어 에베소에 더 오래 오순절까지 유하다가, 먼저 마게도냐를 방문하고, 그 후에 고린도를 한 번 방문하는 계획으로 바꾸었다 (고전 16:5-9).
ㄷ. 이것을 가지고, 바울이 경솔하고 변덕스러운 사람인양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17). 그냥 개인적인 공격을
넘어서서, 그가 전한 복음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동기가 된 것 같다.
2. 여정계획을 변경한 직접적인 이유
ㄱ. 고린도교회를 아끼려 하였다
(1:23-2:4)
*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쓰면서 고린도교회 내에 여러 문제들(교회 내 분파, 근친상간, 우상 재물 등)에 대하여 책망하는 편지를 썼다. 책망을 하면서도, 그의
마음은 오히려 “환난과 애통의 마음”이었고 “많은 눈물”로 가득하였다 (2:4-5). 고린도교회 내에
책망들을 만한 일들을 인하여 책망을 하면서도, 바울은 오히려 자신이 애통하고 눈물을 흘린 것이었다.
고린도교회를 향한 그의 “넘치는 사랑”을 살펴볼
수 있다 (2:5). 사도의 이런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반영한 것이다.
악인이 회개하지 않고 악을 계속하면 하나님은 그를
정녕히 심판하시지만 (겔 18:20), 하나님은 자기 죄 가운데서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악인이 돌이켜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 (겔 33:11). 다른 사람의 잘못을 독기와 칼날을 가지고 책망은 하면서도 속으로 자기 의에 대해 자긍하거나(참: 눅 18:11)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해 아무런
애통도 느끼지 않는 거짓 교사들과 다르다.
* 고린도전서를 받은 고린도교회가 스스로 회개하기 전에 바울이
방문하면, 다시 책망하여야 할 터이니, 그러면 “근심으로” 그들에게 나아가는 것이 되므로, 회개하기 전에
너무 빨리 방문하지 않기를 원하였다 (2:1)
-- 바울은 자기가 믿음의 주관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1:24). 올바른 교역자의 자세는 “주장하는 자세”를 갖지 않고, 자기에게 맡기워진 무리에게 “본”이 되는 것이다 (벧전 5:3). 반면에 거짓 선지자는
양의 무리를 토색하고, 그들을 강포로 다스린다 (겔
34:1-4).
-- 바울은 자기가 교회의 “기쁨을 돕는 자”라 했다 (1:24). 바울의
책망을 듣고,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마음으로 회개한다면 (시
51:17), 그런 애통 뒤에는 참된 위로와 기쁨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
5:4).
-- 바울은 교회와 자기가 근심과 기쁨에 결탁되어
있다 했다 (2:2-3). 교회가 근심할 때 교역자가 기쁠 수 없고, 교회가 기뻐해야 교역자도 기뻐할 수 있다.
-- 바울은 교회와 자기가 그리스도의 날에 서로에게
자랑이 된다 했다 (1:12-14).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언행이 일치가 되게(고전 4:17) 복음을 전하였다. 여기서 “진실함”(εíλικρινεíα)이란 말은 밝은 햇빛(εíλη)에 비추어서 판단해(κρíνω) 볼 때 부정함이 없음을 일컫는 말이다.
바울은 이와 같이 숨긴 동기나 뜻이 없이 고린도교회에 복음 전하는 일을 감당한 것이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한 고린도교회가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면 복음전한 자에게 자랑이요, 또 그런
신실한 종에게 복음을 전해 받은 교회는 그렇게 복음을 받은 것이 자랑이 되는 것이다.
ㄴ. 이렇게 고린도 교회에 시간을 주는 동안,
바울은 또한 에베소에서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복음사역을 할 수 있었다 (고전 16:8-9).
3. 하나님의 미쁘심 (:18-22) – 바울은 자기가 전한 복음의 진실성은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ㄱ. 하나님의 미쁘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났다
(:19-20)
*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모든 약속의 종합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관한 것이었다 (행 3:18-24). 모든
율법의 완성이 되시는 분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롬 10:4). 그런
예수님이 예언대로 오시어서 모든 것을 그대로 다 이루셨다 (요 19:30). 예수님의 오심과 모든 예언을 그대로 성취하심이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심의 증명이다.
* 과연 하나님의 말씀은 요동함이나 변개함이 없이 영영히
진실하다 (사 40:8).
* 바울은 자기의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전한 것이
없으니, 진실하다 하는 것이다.
* 또한 복음 전함을 받은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참되시다 할 때 인치심을 입는 것이다 (요 3:33, 롬 3:4, 엡 1:13). 하나님의 진리를 들을 때에
“아멘” (אמן, 진실로)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20), 그 이유는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의 참되심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믿음을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참으로 받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아멘의 고백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롬 8:16).
ㄴ. 또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인”과 “보증”이 되신다 (:22, 엡 1:13-14). 여기에 “보증”이라는 말은 헬라어로αρραβων(아라본)인데, 계약금 또는 보증금의 뜻을 갖고 있다. 성령을
우리에게 허락하심은, 앞으로 우리 앞에 전개될 새 생명의 삶에 대한 보증금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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