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3장
1. 사도는 그리스도의 편지를 쓰는 사역을 한다 (:1-3)
ㄱ. 성도는 그리스도의 편지이다
(:2-3)
* 하나님은 그 신을 자기 백성의 속에 두고 그 법도를 그
마음에 새기여서 지키게 하시겠다 하셨다 (겔 36:26-27, 렘
31:33). 그 약속을 신약시대에 이루신 것이다.
* 또, 성도는 그리스도의
향기로서(고후 2:14-16),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전하는 편지이다.
ㄴ. 이 편지는 먹으로 쓰는 것이 아니고,
사도의 사역을 통해 성령께서 쓰시는 것이다 (:3). 그러므로, 이 편지가 사도의 천거서가 된다. 고린도교인들이 바로 바울의 사도됨을 인친 것이다
(고전 9:2). 복음전하는 자가 씨를 뿌리기도 하고 물을 주기도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 씨가 자라나게 하심으로 그 복음사역의 참됨을 증거하여 주시는 것이다 (고전 3:6).
2. 사도의 확신 (:4-5, 살전 1:5).
ㄱ. 바울은 자신이 사도직을 행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유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음을 증거한다. 그의 competency가 전적으로
하나님께로서 왔다고 고백한다 (:5, 고전 15:10).
ㄴ. 자신은 질그릇같지만, 자기에게 담겨진 것은 보배임을 확신한 것이다 (고후 4:7). 예수 그리스도만 보배로 전해지면, 자기자신은 질그릇이라도 상관이 없다는 이 자세는 현대의 많은
교역자들이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예: 하용조/이민아 목사님 간증 -- 자신의 몸이 약한 것에 상관 없이,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는 사역을 할 수 있다).
ㄷ. 엘리야의 기도(왕상 18:36)와 같이, 하나님의 사역자에게 필요한
확신은 첫째로 하나님이 그 백성 중에 하나님이심과, 둘째로 사역자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사역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다.
3. 새언약의 사역과 구약의 사역의 비교 (:6-11)
ㄱ. 모세의 율법의 사역
* 돌에 쓰여진 의문 (출 20:1-24:8)
* 정죄하고 죽이게 하는 사역 –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되어 있었다 (신 27:26,
갈 3:10). 지키면 생명을 주는 법이지만, 지키지 못하므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다 (롬 7:10).
* 없어질, 일시적인
사역 – 구약의 것들은 그림자와 같았다 (골
2:16-17, 히 10:1, 마 11:13)
* 그러나 영광스러운 사역 – 모세의 얼굴에 없어질(fading) 영광이 있었다 (:7, 출 34:29-35). 율법은 우리로 죄를 깨닫게 하고 우리 스스로는 의롭게 될 수 없음을
가르쳐서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몽학선생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롬 7:7-14, 갈 3:23-24).
ㄴ. 새 언약, 복음의
사역
* 성령으로 된, 생명을
주는 사역 – 복음의 메시지에도 불신자에게는 저주와 사망이 있지만 (고후 2:16), 믿는 자에게는 생명을 주는 성령의 법이다 (롬 1:17, 8:2).
* 길이 있을 언약(:11) – 이 복음에는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이 충분하게 있는 영원한 언약이다 (요
20:31, 딤후 3:15-17).
* 그러므로 살게 하는 새 언약의 사역이 정죄하고 죽게 하는
율법의 사역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한다. (참: 세례요한 –
눅 7:28)
4. 말씀에 가리워진 사람과 성화되어 가는 사람의 대조 (:12-18)
ㄱ. 말씀과 믿음
* λόγος(logos, 로고스) - λόγος라는 말은 λέγω라는 동사에서 나왔는데 “뜻하는 바 또는 생각하는 바를 나타낸다”는 뜻이 있다. λόγος는 보통 “말씀”으로 번역되는데, “계시”(revelation) 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완전하게 나타내신 예수님을 “Logos”라 칭했다 (요 1:18).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도”, “하나님의 명령” 등으로
번역된 말들은 원어에 대부분λόγος로서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가리킨다. 이λόγος말씀은 영원성이 있고 (마 24:35), 살아 운동력이 있어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 (히 4:12). 바로 이λόγος말씀이 복음전파자들이 전하고 가르치는 말씀이다 (행 8:25, 13:49,
15:35-36, 16:32, 19:10, 살전 1:8, 살후 3:1 등). λόγος는 성경말씀을 총괄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막 7:13, 요 10:35, 계 1:2,9 등). 이λόγος말씀을 간절히 받고 상고하는 것이 고귀한 것이다 (행 17:11).
* 때로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생각나게 하시고 깨달음을
주시는 경우가 있는데 (요 14:26, 16:13-14), 이런 개인적인
구절의 말씀을 가리켜서 ῥῆμα(rhema, 뤠마)라고 한다 (롬 10:8,17,18 등).
이렇게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 마귀에게 대적하는데 유익한 성령의 검이 된다 (엡 6:17). (ῥῆμα 라는 말은ῥέω (utter)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로 utterance란 뜻이다.)
* 이런 말씀(rhema)으로 말미암아 들음(hearing(message heard or preached), ακοη (아코에이))이
있다 (롬 10:17, 갈 3:2, 5:1, 살전 2:13, 히 4:2등). 그 들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생긴다.
ㄴ. 왜 어떤 이에게는 말씀이 수건으로 덮인 것같이 가리워져
있는가?
* 율법 자체가 사람을 맹인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시 19:7-8).
* 단지 율법의 말씀에 담기운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완악함을 인함이다 (:14). 그의 죄가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운 것이다 (사 59:1-2).
* 그런 사람은 두려워하는 종의 영을 받은 것과 같다
(롬 8:15)
ㄷ. 어떻게 말씀을 가리우는 수건이 벗기워 지는가?
* “그리스도 안에서” 그 수건이 벗기운다 (:14). 하나님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드러내어진 바 되었다 (골
1:16-27).
*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기운다 (:15). 성경의 주제가 바로 예수님이시고 (요 5:39), 율법의 결국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롬
10:4), 예수님을 바라볼 때 성경의 rhema말씀이 akoay들려오는 것이다.
ㄹ. 수건이 벗겨진 결과는 무엇인가?
* 더 이상 두려워 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고 양자의 영을
받아 자유함이 있다 (:17, 롬 8:15).
* 주님은 생명을 주시는 영이시기 때문이다
(고전 15:45).
* 그러하신 주님의 영광을 볼 때에 우리도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간다 (:18).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의 영광의 모습을 더 찾아 보려고 해야 한다 – 그에게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고 (히 12:2).
-- 지금은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님을 본다
(고전 13:12) – 성경을 통해 (약
1:23)
-- 지금도 이미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다
(롬 8:29-30)
-- 그러나 더욱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를 온전히 보게 되고,
그 때에는 우리도 온전히 그의 형상으로 화하여져 완성된 영광을 갖게 될 것이다 (요일 3:2).
-- 이 모든 것이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이다
(:18).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