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은,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 도를 행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를 섬기는 것이다 (신 10:12-13). 그리함으로 백성들은 그들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고, 거룩한 생활을 통해 하나님께 부종하게 되는 (즉, 꼭 달라 붙는, to hold fast, to cleave) 것이다 (신 11:22, 30:20). 율법의 목표는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인데 (딤전 1:5), 이것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는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신 6:5, 11:13), 둘째는 이웃을 우리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레 19:18). 이 두가지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마 22:37-40).
한 번은 한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와 생명을 얻기 위해 지켜야 할 계명에 대하여 물었다 (마 19:16-17). 그 때 예수님은 대답하시면서 십계명의 둘째 부분, 제 5~10 계명들에 관해 말씀하셨다 (마 19:18-19). 왜 둘째 부분만 말씀하셨을까? 제 1~4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마음에 있고 예식에 있는 반면, 제 5~10 계명은 실생활에서 사랑의 수고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율법을 지킴에 중요한 것은 “의와 인과 신”이라고 하신 것이다 (마 23:23). 제 5~10계명대로 이웃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함이 없이는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함도 있을 수 없다 (요일 2:3-5,9-11, 3:14, 4:20-21). 성도가 율법을 지키고 온전히 이루게 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함에 있다 (마 7:12, 갈 5:14, 롬 13:8, 골 3:14).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 되는 ‘이웃’은 누구인가? 이웃을 사랑함에 있어서 자기 가족, 자기 친족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다 (딤전 5:8). 그러나 우리의 이웃은 우리와 가까운 사람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눅 10:25-37에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라고 질문했을 때,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드셨다. 이 비유에서 강도만난 사람은 선한 사마리아인과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 관계없는 사람도 이웃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명령하시기를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신다 (마 5:44-45, 눅 6:27-28). 구약의 가르침도 같다 (잠 25:21, 출 23:4-5). 원수를 갚거나 원망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레 19:18). 우리의 ‘이웃’의 범위는 원수에게까지도 미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전 인류가 대상인 것이다.
사랑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은 명령이다. 하나님의 법은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이루리라 하셨고, 하나님의 계명 중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 하셨다 (마 5:18-19). 즉, 사랑하지 않으면 죄를 범하는 것이다. 죄의 결과는 죽음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롬 6:23, 겔 18:4,20). 그래서,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고, 형제를 사랑할 때에 우리가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요일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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