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인에게 쓰는 서신에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었다고 하였다 (갈 3:24). 몽학선생, 즉 소학교 선생과 같은 율법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첫째로, 율법은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의로움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서,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는 그 의로움에 도달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하나님의 법은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백성에게 가르치고 (신 30:16-20), 그 법을 온전히 순종하면 생명과 복이 있음을 말씀한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순종은 율법의 모든 말씀을 항상 실행하는 것이고 (신 27:26, 갈 3:10), 한 말씀이라도 어기면 모든 말씀을 어긴 것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불의하게 된다 (약 2:10). 육체를 입고 사는 인생이 고백할 수 있는 말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말 뿐이다 (전 7:20, 왕상 8:46, 시 143:2, 욥 9:2, 25:5-6, 롬 3:20). 그리고 죄인이므로, 하나님의 엄하신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롬 3:19).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은, 제자들이 그랬듯이,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이다 (마 19:25).
그런데, 율법에는 또한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 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충분히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마 19:26). 어렴풋 하게 나마(고후 3:13,18, 고전 13:12) 율법의 곳곳에 여러가지 모양으로, 여러가지 부분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오실 메시야 그리스도에 관해 말씀하셨다 (히 1:1).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이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을 말씀하셨고 (창 3:15),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고 (창 22:18, 갈 3:16),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영원한 제사장을 약속하셨고 (시 110:4, 히 5:6, 7:21), 하나님의 메시야를 통해 우리가 나음을 입고 평화를 누리리라 하셨고 (사 53:5), 다니엘도 그 이상 중에 하나님의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 받을 것과 속죄를 위한 죽음을 당할 것을 보았다 (단 9:24,26). 율법의 의문/조항은 죄인인 우리를 죽음에 합당하게 하였으나 (고후 3:6), 살리는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유함을 가져오셨다 (고후 3:17).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시는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 (롬 10:4).
둘째로, 율법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의 받을 심판의 엄위함을 가르쳐서, 그들로 어느정도 두려움을 갖고 그 망령되이 행하는 것에 제갈을 물리게 한다 (딤전 1:9-10). 이들에게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고 죄의 길로 빨리 달려가지만 (롬 3:9-18), 그래도 어는 정도는 벌의 두려움으로, 또는 다른 사람 앞에서의 수치함때문에, 죄를 공공연하게 짓는 것에 제한을 받는다. 세상의 공법도 이런 논리로 사회의 질서를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 (롬 13:2-4).
셋째로,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배우게 하는 도구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에 그 법을 기록하시지만 (렘 31:33, 히 10:16),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확실하게 확인하고 깨닫게 해 주는 도구이다; 그 마음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이 너무나도 명확하여서 성경말씀을 묵상함에서 더 이상의 유익을 얻지 못하는 그러한 온전한 의인은 없다. 그러므로, 의인은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며 (시 1:2), 그 율법은 영혼을 소성케 하고 지혜롭게 하며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하며 (시 19:7-11), 의인의 발에 등이요 그 길에 빛이다 (시 109:105). 그래서,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한 모세의 결론은, 그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고 마음에 두어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법도임을 알고 그대로 살라는 것이었다 (신 32: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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