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전 정화 (:12-17)
ㄱ. 배경 (:12-14)
·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 참석하셨던 예수님은, 잠시 가버나움에 계셨다가, 그의 공생 사역을 위해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가셨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해변 북쪽에 있는 도시로, 벧세다에서 서쪽으로 약 3 마일 거리였다.
· 유월절
n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은 일년에 세 차례 , 곧 무교절/유월절, 칠칠절/오순절/맥추절/초실절, 초막절/수장절에 하나님의 정하신 곳, 곧 예루살렘 성전에 나아가 절기를 지켜야 했다 (출 23:14-17, 34:18-24, 레
23:4-44, 민 28:16-29:40, 신
16:1-17). 초막절은 제 칠월 또는 에다님 월(왕상 8:2)의 15일 부터 일주일 지키는데, 칠 월의 첫 날은 나팔절이었고, 제 십일은 죄를 자복하는 속죄일이었다 (레
23:23-44, 민 29:1-40).
n 절기를 지킬 때에, 각 사람은 하나님께 받은 복을 따라 그 힘대로 예물을 바치었다 (신 16:17)
n 세 절기 중 하나인 유월절은 제 1월(현재 양력의 3-4월) 아빕월, 또는 니산월(느 2:1, 에 3:7)에 지키었으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였다 (출 12:1-20,
13:1-4).
n 예수님도 하나님의 규례에 따라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가신 것이다(:13).
· 절기에 참여하는 사람이 멀리 떨어져 사는 경우 짐승을 끌고 가기가 용이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가지고 가서 예루살렘에서 다시 예물을 구입하여 절기에 참여하게 되어 있었다 (신
14:24-26). 그런데, 이런 빌미를 악용하여, 매매활동이나 돈 바꾸는 것을 성전 뜰 안에서 자행하였고, 이런 것을 통해 많은 영익을 얻은 것이다. 하나님은 성전을 만민의 기도하는 집으로 지으셨는데 (사 56:7), 사람들은 성전을 도적의 굴혈로 바꾸었다 (렘 7:11).
ㄴ. 예수님의 성전 정화
· 예수님은 두 차례에 걸쳐 성전을 정화하셨는데, 요 2장은 사역 초기에 하신 것이었고, 둘째 정화는 마
21:12-13, 막 11:15-17, 눅
19:45-46에 기록된 대로 십자가를 앞두시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bookend가 되는 사건이 성전 정화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성전에서 올바로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중시하셨다.
·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라 하시며,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것은 강도질에 해당한다고 규명하시었다.
· 매매 활동 자체가 (성전 바깥에서 거행된다면) 나쁜 것이 아니고, 매매한 짐승으로 제사를 드리려는 것도 나쁜 것이 아니지만,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것을 예수님은 용납하시지 않으셨다.
· 오늘날 교회당 안에서 가끔 있는 구매활동을 예수님은 어떻게 보실까? 현재의 교회당 건물이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두신 옛적의 예루살렘 성전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지는 않을 수 있으나 (교회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는 성도가 바로 성전이다 – 고전 3:16, 6:19, 고후 6:16), 교회당도 성도/교회가 모여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장소이다.
n 교회에서 성탄 음악회를 하며, 입장권을 파는 것?
n 선교의 명목으로 교회에서 서적이나 음반을 파는 것?
n 또 다른 모양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물건을 팔고 사는 것?
· 이 정화를 예수님은 열심을 내어 하시었다. 제자들은 시 69:9의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였다. 하나님은 그의 사역을 열심으로 이루시는 분이시다 (사 59:17,
9:7, 겔 5:13, 39:25, 왕하 19:31)
n 이와 같이 우리도 선한 일에 열심있기를 원하신다 (딛 2:14, 고후 7:11, 참: 고후 9:2, 왕상
19:10,14).
· 또한 예수님은 성전을 가리키어 “내 아버지의 집”이라 하시었다 (:16).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전을 정화할 권세가 있으심을 말씀하신 것이다.
2.
예수님의 보여 주실 표적 (:18-22)
ㄱ.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는 예수님에게,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했다 (:18,
고전 1:22). 예수님이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구한 것이다.
ㄴ. 예수님은 비유로 부활의 표적을 보이실 것을 말씀하셨다.
·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19)
n 당시의 성전은 헤롯이 건축한 것으로, Josephus 에 의하면 기원전 20년에 시공하였고, 본문 말씀대로 46년에 걸쳐 지어졌다 (:20). 그러므로,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불과 몇 년 전에 완공되었던 것이다.
n 예수님은 자기의 몸이 바로 성전임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21, 엡 1:23, 골 1:18).
n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고 하심으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일 것을 은유적으로 말씀하셨다. 후에 예수님을 심문하는 자리에 거짓증인들이 와서 말하기를 예수님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라고 했는데 (마 26:60), 이 증거가 거짓인 것은, 예수님은 스스로 성전을 헐겠다고 하시지 않으셨다.
n 예수님이 성전을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하신 것은 그의 부활을 예언하신 것이었다.
· 또 다른 때에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보여 주시기를 구할 때,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 하셨다 (마 12:38-40, 16:1-4, 눅
11:29-30). 요나의 표적이란, 예수님께서 땅 속에 사흘 계시다가 부활하시겠다는 것이다.
· 부활의 표적이야 말로, 예수님께서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신 표적이었다 (롬 1:4). 그 표적으로 예수님은 성전을 정결하게 할 권세가 있으심을 증명하신 것이다.
ㄷ. 제자들의 깨달음
· 나중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이 성전된 예수님의 몸의 부활을 의미하였음을 깨달았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생각나게 하고 깨달음을 주신다 (요 14:26, 15:26, 16:13-14).
· 또한 제자들은 성경 구약에 예수님의 부활에 관해 증거한 것을 기억하고 깨닫게 되었다 (시 16:10 –
행 2:25-32).
3.
예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은? (:23-25)
ㄱ. 표적을 보고 믿는 믿음?
·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는 무리들에게 예수님은 그 몸을 의탁하지 않으셨다 (:23-24).
· 복음을 증거할 때, 주님께서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할 수도 있다 (막 16:20).
그러나, 이적이나 이상 보는 것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자는,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거짓 겸손한 척하나, 실제로는 영적인 교만에 빠지기 쉽다 (골 2:18).
· 표적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 중 많은 자가 실제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일 수 있다. 예: 요 6장에서 5병2어의 표적을 본 후, 사람들은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하다가 (:14), 금방 “우리를 보고 당신을 믿게 하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라 하고 (:30), 결국은 그들 중에 많이 물러가고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아니하였다 (:66).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음은, 표적이나 사람의 지혜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고, 단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께서 전해지는 것이다 (고전
1:22-23). 이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거리낌이 되고, 어떤 이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더라도.
ㄴ. 예수님이 보시는 중심
· 사람은 스스로를 옳게 여기지만, 하나님은 그 심령을 감찰하신다 (잠 21:2).
· 예수님은 사람의 속 중심에 있는 것을 다 아시고 (:25),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신다 (시 51:6).
· 하나님의 원하시는 중심은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마음이고 (시 51:17), 전심으로 하나님께 향하는 사람이다 (대하 16:9).
· 그런데, 사실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고 (렘 17:9), 그로 부터 온갖 악이 쏟아져 나온다 (마
15:18-20, 막 7: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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