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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June 14, 2016

제 1 권: 창조주 하나님, 제 9 과 - 하나님은 우상을 금하신다.

하나님은 상천하지 또는 아래 속에 있는 아무 것의 형상이든지 우상으로 만들어 절하고 섬기는 것을 금하신다 ( 20:4-5, 26:1, 5:8-9). 어떤 형상의 우상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없다. 아무도 하나님의 영광에 접할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임하실 음성으로만 임하셨고, 형상은 아무도 보지 못하였다 ( 4:12,15-19). 다른 사람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당신을 드러내주신 모세에게도 ( 33:11), 하나님은 얼굴을 보이시지 않으셨다 ( 33:20). 하나님 앞에 모셔 스랍들도 감히 영광을 없어, 자기들의 얼굴을 가리고 있다 ( 6:2). 하나님은 아무도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도 하나님을 없다 (딤전 6:16). 단지 독생자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드러내셨을 뿐이고 ( 1:3, 1:14), 어떤 형상, 어떤 그림, 어떤 우상으로도 하나님의 영광을 손상시키지 않고 하나님을 나타낼 수가 없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우둔하고 교만하여 자기 마음에 고안해낸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우상으로 만들고, 그것이 마치 신비한 능력이 있는 듯이 그것에 신격을 부여하기를 마지않는다. 여호수아가 증거한대로 아브라함의 아비 데라는 우상을 섬기는 자였는데 ( 24:2), 홍수 심판 얼마 되어 셈의 자손들도 우상을 섬기었다는 증거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을 보고서도,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것이 자기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신이라 하였다 ( 32:4,8). 사람의 어리석음이 얼마나 심한지, 같은 나무로 땔감을 삼기도 하고, 요리하는 불을 피우기도 하고, 또는 신상을 만들어 절하기도 한다 ( 44:12-17). 우상은 단지 사람이 만든 것이고 ( 40:18-20, 41:7, 46:5-7, 17:29, 135:15, 115:4) 허망한 것인데 ( 41:29, 37:19, 115:5-7), 사람이 그런 우상을 의지하고 좇으면 결국은 우상처럼 허무하게 되고 만다 ( 115:8, 왕하 17:15).

교회역사에, 4세기 초반에 열린 Council of Elvira 에서 교회 내에서 어떤 형상(imagery) 사용하는 것을 금하였는데, 후에 787년에 Second Council of Nicaea 에서 그것을 번복하여 교회 내에서 images 허용했을 아니라 경배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카톨릭에서는 지금도 그런 관습을 계속해 오며, 가지의 변증을 놓는다. 첫째, 형상이나 그림을 사용하는 것은 소위 무지, 무식한 자들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가르치는 데에 유익이 된다고 한다. (카톨릭 교회에서 크게 존경 받는 6세기 후반기의 그레고리 1 교황이 그렇게 가르침). 그러나, 성경은 우상은 거짓말을 가르친다고 했다 ( 2:18-19, 10:8). 우상이나 형상을 통해서 하나님께 대하여 배우는 것은 것이고 거짓이다는 말씀이다. 둘째, 교회 안에서 우상과 형상 또는 그림에게 예를 표하는 것은 idol service (ειδωλοδουλεία) 이지만, idol worship (ειδωλολατρεία)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고 한다 (John Cochlaeus, 1549). 여기에서 service (δουλεία) 이란 말은 종이 주인을 섬긴다는 말이고, worship (λατρεία) 이란 말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만 쓰인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장난에 지나지 않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우상 섬기는 것을 간음에 비교한다 ( 6:9, 16:15-22 ). 그리고 우상을 섬기는 것을 금하실 아니라 ( 20:4-5), 우상 자체에서 멀리하라고 명하신다 (요일 5:21).

(: 모든 그림과 조각 등의 예술품을 금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품을 만들 있으나, 그냥 예술품으로 생각할 것이어야지,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무엇이라고 문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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