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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August 18, 2017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란?

영어 표현에 "meet your Maker"란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세상을 떠난다는 말을 완곡 어법(euphemism)을 사용하여 하는 말이다. 이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는 것은 물론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대로이다 (히 9:27).  죽은 후의 조물주 하나님을 만나는 것 말고, 아직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만나면, 자기의 인생이 온전히 변화될 것이란 생각으로 그것을 추구하고 간구하는 이들이 많은데, 정작 어떤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일까?

하나님은 사람이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다 (딤전 6:16). 그러나, 그러하신 하나님을 하나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 즉 예수님이 나타내시었다 (요 1:18).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을 본 것은 곧 하나님 아버지를 본 것이라 하시었다 (요 14:9).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볼 수 있으며,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이 인정하시는 만남을 갖는다는 것은 내 육신의 눈으로 보거나, 무슨 환상 중에 예수님 같이 생각되는 분을 보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30여년 간 계실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았다. 예수님과 같이 식사도 하고, 대화도 나누고, 가르침도 듣고, 병고침을 받기도 했으며, 귀신 들렸던 자가 깨끗함을 받기도 했다. 이런 여러가지 일들을 예수님은 비밀히 하신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시었다. 예수님을 보기는 하였으나, 예수님을 보고 들은 사람들에 대하여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하셨다 (요 8:19).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기에, 예수님을 가리켜 귀신이 들렸다고 하기도 하고 (요 8:52),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였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기간 중에,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며 칭찬하신 사람은, 자기의 종을 위해 예수님에게 간접적으로 장로들과 벗들을 통해서 간구하였던 백부장이었다 (눅 7:2-10). 이 백부장은 예수님에 관해서 소문은 들었으나, 예수님을 직접 대면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예수님을 직접 대면하지 않았지만, 이 백부장이야 말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아니었을까? 마 13장에 왜 예수님은 천국의 비밀을 비유로 말씀하시는가 하고 제자들이 질문하였을 때,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저희는 듣기는 들어도 꺠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셨다 (마 13:10-15). 예수님을 보고, 그 음성을 그저 듣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깨닫고 그를 아는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도 중에 말씀하시기를, "영생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하셨다 (요 17:3).

하나님, 예수님을 만남과 깨달음과 알게 됨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성령의 역사로이다; 고후 3:18에 쓰인대로, 주님의 영광을 보는 것은 거울과 같은 (약 1:23-25) 성경을 통해서 이고, 이는 주의 영의 역사이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입은 자들이 그들이 경험한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한 것으로 (요일 1:1-4), 우리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여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는 말씀이다 (요 20:31, 딤후 3:15-17). 이 말씀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요 14:26, 16:13). 하나님을 보고 그의 뜻을 알게 됨은, 사람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성령께서 가르쳐 주실 때에 가능한 것이다 (고전 2:9-11). 그럴 때에 예수님께 칭찬들은 백부장처럼, 보지 않고도 본 것 이상으로 믿는 귀중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요 20:29).

이렇게,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거는 무었일까?

첫째, 위에 언급된 백부장의 예를 살펴 볼 때,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기이히 여기신 이유는, 백부장의 말에 자기가 자기 밑의 수하에게 이리 하라 저리 하라 하면 하듯이, 예수님의 말씀이 병을 낫게 하는데에 절대적인 효력이 있음을 선포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러하신 전능자 예수님을 자기의 누추한 처소에 감당할 수 없음을 고백하였다 (눅 7:6-8). 자기 자신의 명철을 뽐내지 않고, 범사에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함이 있다 (잠 3:5-6).

둘째, 전능자 하나님을 인정하기 때문에, 사람의 눈에 칭찬듣는 일을 추구하기 보다는, 내게는 보이지 않으시지만, 나를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 상받을 일을 좇을 것이다. 산상보훈 중 마 6장의 결론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인데, 이것의 구체적인 적용으로 같은 장 앞부분에 나오는 말씀은, 구제하거나, 기도하거나, 금식하거나 할 때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람이 칭찬할 일을 하지 말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상으로 갚으시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보물을 이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이렇게 자기를 찾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상 주심을 믿어야 할 것이다 (히 11:6).

셋째, 절대주 하나님을 인정하기 때문에, 나를 항상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하고 (대하 16:9상),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한편으로는 경외함으로 조심하고,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인정하고 모든 억울한 일의 해결을 맡김이 있을 것이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가 다른 사람들이 없는 집안에서 유혹할 때에 대답하기를,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하였다 (창 39:9). 요셉이 두려워한 것은 보디발의 노함이나 사회나 국가의 벌이 아니라, 하나님께 득죄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 보디발의 아내의 거짓말로 인해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요셉은 한 마디도 불평했다는 기록이 없다. 오히려 전옥은 요셉을 신임하고 옥중 제반 사무를 그에게 다 맡기고 돌아보지 아니하였다 하였다 (창 39:21-23). 하나님께서 공의로 모든 것을 바로하실 것을 굳게 믿은 요셉이었던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제 육안으로 주님을 뵈온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제게 가버나움의 백부장의 믿음을 주시고, 요셉의 믿음을 주셔서, 주님을 온전히 경외하고 인정하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 하늘에서 상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이 죄인 약하여 항상 넘어지오나, 긍휼히 보시고, 용서하시고, 주님의 마음을 살피고 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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