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거짓 스승들 (:18-19) – 빌립보 교회를 미혹하게 하려는 두번째 부류의 거짓 스승은 18-19절에 묘사된 사람들이었다.
당시에 교회를 위협하는 사상 중에 영지주의가 있었는데, 이들은 영은 거룩하나,
육과 물질은 본질적으로 악하기 때문에 사람이 육체에 대하여 무엇을 하여도 그 악한 것이 바뀌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이것이 두 가지로 세분되어, 악한 육체를 억눌러야 한다는 금욕주의와,
육체의 정욕대로 마음대로 해도 상관이 없다는 쾌락주의로 나타났는데 빌 3장에서는 특히 후자의 사람들에 관한 경고인 듯 싶다.
영지주의적 쾌락주의의 영향은,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육체의 정욕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잘못된 가르침으로 나타났다. (참고: 골로새 교회를 위협하는 사상도 영지주의였는데,
후에 골로새서 공부할 때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될 것임.)
이런 거짓 스승들을 바울은 묘사하기를,
ㄱ.
이들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18)로서 결국은 멸망할 것이다 (:19).
ㄴ.
“저희의 신은 배요”
(:19) – 거짓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들의 욕심과 안녕을 위함이고, 성도를 위한 것이 아니다. 성도들에게 생명을 더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멸망시키려 하는 것이다 (요 10:10).
ㄷ.
“그 영광은 그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19) – 정욕대로 부끄러운 일을 행하면서 죄를 죄라 하지 않고 오히려 옳다고 하는 자들이다 (롬 1:26-32).
반대로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우리가 행위가 아니고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나,
그렇다고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롬 6:16). 우리는 더 이상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않고 (롬 6:16, 벧전 1:14),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하여야 한다 (벧전 1:15-16).
2. 계속 추구하여야 하는 신앙의 경주 (:12-17)
ㄱ.
구원의 확실함
* 바울이 여기서 아직 못 얻었다, 아직 잡지 못 했다 하는 것은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말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아직 천국에 이르지 못 했으나, 장차 천국에 이르러 영생을 누릴 것이 확실하므로, 이미 영생을 얻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요 3:36, 5:24). 바울도 우리가 소망 가운데서,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혔다고 했고
(엡 2:6),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다고 했다 (롬 8:35-39). 우리의 구원의 보증은 성령께서 직접 보장하시는 것이다 (엡 1:13-14, 고후 1:22). 우리는 이미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갖고 있는 것이다 (:20).
* 자기의 가는 길이 확실하므로, 바울은 담대히 자기를 본받으라고 하고 있다 (빌 3:16-17, 4:9, 고전 4:16, 살후 3:9)
ㄴ.
계속 추구함
-- 구원은 이미 얻었고 확실하나, 성도가 계속 추구해야 하는 것은 신앙의 경주이다 (:12-14).
* 이 경주의 결국에는 성도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이미 예비되어 있다는 확신이 있다 (딤후 4:7-8).
* 그러나 경주하는 자는 법대로 경주하여야 면류관을 받는다 (딤후 2:5).
* 경주의 법 (:13-14)
(1)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눅 9:62) – 하나님께서 이미 용서해 주셔서 잊어버리신 우리의 죄를 오히려 우리가 잊지 못하고 그 중압감에 억매어 살지 말아야 하며 (시 103:8-12, 미 7:18-19, 사 1:18, 43:25, 렘 31:34, 히 8:12, 10:17), 그렇다고 함부로 죄를 짖고 사는 것이 아니라 죄 속에 살던 옛 사람의 모습을 벗고 죄에게 종노릇하던데서 벗어나야 한다
(롬 6:6).
(2)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 우리의 경주의 푯대는, 우리의 시선이 고정되어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히 12:2). 우리의 기다림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20), 우리가 사모하는 영광은,
우리 낮은 몸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되는 것이다
(:21, 고후 3:18). 이런 변화는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우리가 부활할 때 이루어 질 것이다 (고전 15:53).
* 이러한 경주를 하게 하시려고,
예수께서 우리를 먼저 잡으신 것이다
(요 15:16, 바울의 예: 행 9:1-9,15, 딤전 1:16)
* 그러므로 경주하는 자는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고전 15:58).
ㄷ. 마치 이미 이긴 전쟁을 싸우지만
(요 16:33, 요일 4:4, 5:4-5), 군사는 그 모집하신 분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계속 싸워야 하는 것과 같다
(딤후 2:3-4).
ㄹ. 또한 이미 알곡을 거둘 수확이 있을 것을 알지만
(마 9:37-38, 눅 10:2, 요 4:35-36), 고난과 연단을 잘 견디고 계속 수고하는 자들은 의의 평강한 열매를 거둘 것이다
(갈 6:9, 히 12:11, 딤후 2:6).
3. 하나님께서 열매 맺는 생활을 그 자녀에게서 요구하시는 이유 – 우리가 우리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
(갈 2:16, 3:2), 그러나 하나님은 구원받은 그 자녀들이 선한 행실을 하고 거룩하게 되기를 요구하신다 (계 19:8, 벧전 1:15-16). 그래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졌고, 동시에 거룩하게 되라고 부르심을 입은 무리인 것이다 (고전 1:2)
ㄱ.
열매를 맺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이루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과목을 만드신 것은 그 종류대로 열매를 맺으라고 하신 것이었다
(창 1:11-12).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사람이라는 “나무”를 물가 옥토에 심으신 것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라고 하신 것이었다 (겔 17:8, 참: 눅 13:6-9).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로 지으신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선한 행실의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하심이다 (엡 2:10, 롬 7:4).
ㄴ.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다고 하시며, 열매로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알 수 있다고 하셨다 (마 7:16-20, 눅 6:43-44, 약 3:12). 돌감람나무 같던 우리가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은 것 같이
(롬 11:17), 우리가 근본적으로 정체성이 바뀌었음을 우리의 열매가 나타내준다.
·
악인은 사망을 위한 열매를 맺는다 (롬 6:21, 7:5)
·
반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가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한다는 것을 증거한다
(갈 5:16-24). 즉, 성령의 열매를 맺음은 성령의 임재하심의 증거이다.
·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있음을 증거한다 (요 15:4-5).
·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하늘로 부터 오는 지혜를 가진,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을 증거한다 (마 21:43, 약 3:17-18).
·
열매을 맺음은 생명이 있음의 증거이다 (민 17:8 –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왕하 19:30, 사 37:31 – 이스라엘의 남은 그루터기)
·
그래서 좋은 열매 맺는 것이 회개에 합당한 것이라 했다
(마 3:8, 눅 3:8)
ㄷ.
열매를 맺음은 하나님께 복을 받음을 증거한다 – 수고하여도 이루지 못하고 결실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음의 증거이고 (레 26:14-16, 시 127:1, 호 9:16), 반면 수고로움의 결과로 열매를 맺게 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복이다 (레 26:3-4, 시 1:3, 사 3:10, 65:21, 겔 34:27, 슥 8:12, 약 5:18). 또한 맺은 열매를 누리게도 복 주신다
(잠 31:31).
ㄹ.
우리가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께 올바른 제물을 드림이 된다 – 열매,
특히 첫 열매는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지는 제물이었다 (출 23:19, 민 18:13, 28:26. 느 10:35,37, 잠 3:9, 겔 44:30, 48:14, 히 13:15).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사역하는 중의 열매 (빌 1:22), 또는 연단된 자로서 사는 중에 맺는 열매 (히 12:11)가 바로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영적 예배의 제물이 아닐까! (롬 12:1-2).
ㅁ.
열매을 맺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리게 된다 (마 5:16, 엡 2:10, 빌 1:11, 벧전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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