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2장의 초반부와
12절 이하의 후반부를 연결해 주는 말은 “그러므로”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우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었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 것이 후반부에 나와 있다고 할 수 있다. 바울은 우리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구원받은 사람은 무슨 의무가 있는가를 말하며, 겸손을 배운 신도로서 구원과 신앙생활에 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지 가르치고 있다.
1. 구원의 원동력 (:12-13)
ㄱ.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13, 엡 2:8-9)
·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여기서 “행하시는”이란 말은 ενεργέω(에네르게오, works in, works
effectually)로서 실제로 효율적으로 일하시는 것을 가르킨다.
같은 단어가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기 위해 성경 여러 곳에 쓰여졌다 (고전 12:6, 갈 2:8, 3:5, 엡 1:11,20, 3:20, 빌 2:13, 참: 살전 2:13)
·
행하시되, 하나님 자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하신다. 우리가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되어지는 것이다 (시 79:9).
·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향한 소원도 주시고, 소원대로 행하게도 하시는 것이다 (:13). 우리의 구원은 전혀 우리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것인데 (롬 3:28), 이 믿음조차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다 (엡 2:8).
·
그러므로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다 (엡 2:9, 고전 1:29). 우리에게 자긍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질 수 밖에 없다.
ㄴ.
그런데 왜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라”는 명령을 하시는가?
(:12).
·
이 구절을 잘못 이해하면, 구원을 이루는데 우리의 몫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은 구원을 모든 만민에게 다 허용하셨는데, 그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몫인 것처럼 잘못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은혜롤 우리는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함으로 그의 부르심에 응답하여야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해 주실 때에만 그것이 가능하다.
13절에 증거되었듯이,
우리에게 있는 선한 소원도 그것을 행함도 실제로는 하나님께서ενεργέω(에네르게오, works in, works effectually)하시는 것이다.
·
“구원을 이루라”는 명령은 우리 스스로에게 구원을 이루는 능력이 있다는 말씀은 아니다.
n
손 마른 자를 고치신 예수님 (마 12:13, 막 3:5, 눅 6:10)은 그의 손이 이미 말라서
(ξηραίνω, xeraino, 제라이노, dried up (강이 마르듯,
계 14:15), withered (손이)) 움직일 수 없음을 아시고도, “손을 내밀라”고 하셨다. 그 명령과 함께,
이미 예수님은 그 손을 낫게 하셔서 손을 내밀 수 있게 하셨던 것이다.
n
성전 미문 앞에 앉아 있던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에게,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명했다.
그 앉은뱅이 스스로에게는 그 명령을 따를 힘이 없었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해진 명령은 이미 그에게 일어나 걸을 힘까지 부여한 것이었다
(행 3:6-8).
n
사 55:1-2에서 하나님께서 생명의 양식을 돈 없이 사서 먹으라고 하신다. 왜 돈 없는 자에게 그냥 받아 먹으라 하지 않으시고 사서 먹으라 하실까? 첫째, 생명의 양식을 은혜로 주시지만, 그것이 가치가 없어서 거져 주시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는 엄청난 댓가를 치루어야 얻을 수 있는 것임을 상기시키시는 것 같다. 둘째, 그렇게 큰 댓가를 치르고야 얻을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돈 없이,
값 없이 사서 먹으라고 하심으로,
생명의 양식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알게 하시려는 것 같다.
“구원을 이루라”고 하시면서,
실제로는 그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효율적인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가르치셔서 우리로 겸손을 배우게 하시려는 것이다.
·
“God acts in us in such a manner, that He, at
the same time, does not allow us to be inactive, but exercises us diligently,
after having stirred us up in a secret influence.” (Calvin)
ㄷ.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하시는가?
(:12)
·
이 구절을 잘못 가르치는 사람들은, 이 구절이 구원의 견인성을 부인하는 구절로 알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은혜를 도로 뺏어가실 수도 있으니 두려워하고 떨라는 식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
구원을 이루는 데에 우리의 몫은 0%이고, 하나님의 역사가
100%인데,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면서 변개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롬 11:29).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시고 택하셔서 시작된 것이고,
예수님의 핏값으로 산 것이고, 성령께서 보증이 되시는 확실한 것이다 (엡 1: 3-14). 아무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고 (롬 8:33-39), 예수님은 자기의 백성을 하나도 잃지 않으셨고 단지 멸망의 자식은 멸망 받을 뿐이라 하셨다 (요 17:12). 하나님의 말씀을 잠시 기쁨으로 받았다가 결실치 못하고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 있으나
(마 13:20-22, 히 6:4-6), 그런 사람들이 나가는 것은 그들이 본래 하나님의 백성에게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일 2:19).
·
여기서 가르치는 “두렵고 떨림”은 구원의 확신이 없어 요동치는 파도같이 의심하라는 말씀이 아니고 (약 1:6), 구원의 역사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인 것을 깨달아 겸손을 배우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라는 말씀이다.
2. 세상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은? (:14-18)
ㄱ.
세상의 빛 (:15, 마 5:14).
·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나 (요 17:14,16), 세상과 동떨어져 살지 않고 세상 안에서 하나님 자녀의 역할을 감당하여야 한다
(요 17:15).
·
이 역할은 세상에서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참고: 아브라함의 자녀, 곧 하나님의 백성은 하늘의 별과 같겠다고 하셨다 (창 22:17, 26:4, 신 1:10,
10:22, 느 9:23, 대상 27:23)
n
이 빛은 생명의 말씀을 밝힌다 (:16).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빛을 비추어야 하고
(사 60:1-3), 감추어 두어서는 안 된다 (마 5:15).
n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날 것이다
(단 12:3).
n
또한 내가 비춘 빛에 비추인 사람,
즉 내가 나눈 생명의 말씀을 들은 사람이 다시 빛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면, 그런 비추임이야 말로 가치있는 것이고 자랑할 만한 것이다
(:16). 그래서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에게는 “기쁨”이고 “면류관”이었고 (빌 4:1), 그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명을 관제(drink
offering)로 내어줄찌라도 기뻐할 수 있었다 (:17-18).
ㄴ.
이 역할을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는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해야 한다 (:14)
·
원망과 시비 (:14), 다툼이나 허영 (:3) 같은 것들은 자기 자신을 과대 평가하고 자기 자신을 높여 보려고 하는 데서 오는 것들이다.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워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 그 해결책이다 (:3-5).
·
“원망”이라고 번역된 말은 γογγσμός
(공구스모스, murmurings)라는 의성어로서 드러내 놓지 않고 사적으로 수군거리며 불평하는 것을 말한다 (요 7:12, 행 6:1, 벧전 4:9 에 같은 단어가 나온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 중 이런 원망을 했었는데 (출 16:1-9, 민 14:27, 17:5,10), 특히 하나님의 종 모세와 아론을 향한 원망은 하나님을 시험하고 하나님께 원망하는 것이 되어 원망하던 백성이 멸망하게 되었다 (고전 10:10).
·
“시비”라 함은 διαλογισμός (디알로기스모스, disputings)라는 말인데 공공연한 논쟁을 가리킨다.
이런 논쟁의 목적은 진리를 찾으려는 것이 아니고, 변론과 언쟁으로 자신의 유익을 구하려는 것이다
(딤전 6:4-5).
ㄷ.
그리고, 흠이 없고 순전하여야 한다 (:15).
·
하나님의 자녀가 책망들을 일이나 말을 하면,
복음의 대적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된다 (딛 2:7-8, 참: 딤전 5:11-14).
·
다윗이 밧세바의 일로 범죄하였을 때, 그 죄에 대하여 사함을 받기는 하였으나,
그 일은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다 (삼하 12:13-14).
·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성결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그 대적을 당치 못하게 하셔서라도, 회개하고 성결하게 되는 것을 요구하실 수 있다 (수 7:8-13 – 아간의 범죄와 아이 성에서의 패배).
·
물론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서 (렘 17:9-10), 스스로 하나님의 기준에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통하여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있을 것이다
(롬 12:1-2).
·
성도가 “순전”함은 세상이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것에 대조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도는 그 존재와 행위가 칭찬들을 만하여서,
전해지는 복음이 참인 것을 증거해야 한다 (행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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