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빌립보 교회 내의 분쟁 (2:1-4, 4:2-3)
ㄱ.
빌립보 교회 내의 분쟁
* 빌립보에서 바울의 전도를 처음 들은 사람들은 여자였다 (행 16:13). 그 중에서도 루디아라는 여자는 자기의 집을 열고 바울이 빌립보에 있는 동안 유하도록 하였다 (행 16:14).
* 같은 마게도냐 지방에 있는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도 귀부인들이 먼저 복음을 받은 사람들 중에 있었다 (행 17:4,12)
* 이와 같이 여자들이 빌립보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었는데, 그 중에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여자들이 서로 간에 분쟁이 있었던 것 같다 (4:2). 이들은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힘쓰던 사람들이었으나 (4:3), 그들은 한 마음을 품지 못했다.
분쟁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나, 하여간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그들이 같은 마음을 품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4:2). 그들의 분쟁으로 인해 교회 전체에 여파가 있었을 것이다.
*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한 마음을 갖고 한 뜻을 갖는 것이 (1:27, 2:2), 자기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위로가 되고, 사랑의 안위가 되고,
성령의 교제가 되며, 큰 기쁨이 된다고 하고 있다
(2:1,4).
ㄴ.
분쟁의 원인
(2:3) –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분쟁의 원인으로 바울은 ‘다툼’과 ‘허영’을 말하고 있다.
* 다툼 (εριθεία, 에리씨아, strife) – εριθος (에리쏘스,
추종자)를 찾는다/구한다는 뜻을 갖고 있는데, 결국 자기와 의견을 같이 하는 사람을 모아서 당 짓는 행위를 가리킨다.
고후 12:20, 갈 5:20, 약 3:14-16 빌 1:17 등에도 같은 말이 나오는데, 자기의 생각이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는 생각으로 경쟁심과 사적인 야망을 드러내는 것이 그 뿌리이다.
* 허영 (κατοπτρίζομαι, 카톺트리죠마이, vainglory) –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본다’는 뜻이 있는데,
마치 희랍신화에 나오는 나시스가 연못에 비친 자기 자신의 얼굴에 반한 것을 연상시키는 말이다. 이 말은 육체적인 것으로 스스로 영광을 찾으려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해야 하고 (고전 1:31, 고후 10:17, 렘 9:24), 그 외 자신의 육체적인 것으로 자랑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끊어버리실 것이다 (시 12:3). 바울은 자기 자신을 세상의 구경거리가 되는 미말에 선 자 (고전 4:9), 만물의 찌끼(고전 4:13) 정도로 낮추어 생각하였다. 또한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 했다 (엡 3:8).
ㄷ.
분쟁의 해결책 – 다툼/분당과 허영으로 오는 분쟁의 해결책은 겸손이다 (2:3).
* 겸손은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다
(2:3).
--
재능이나 기술에 있어서 무리하게라도 남을 나보다 우월하게 여기라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는 잘 활용하여야 한다. 단지 그 달란트를 활용함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어야 하고, 자신이 교만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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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혼의 성결 문제에 있어서 우월감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혹 어떤 사람이 스스로 나무랄 것을 찾지 못한다 하여도 사람의 중심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표준 앞에서 의롭다 할 수 없다 (잠 16:2, 고전 4:3-5). 그러므로, 낮은 자리에 앉는 것이 안전하고 지혜롭다 (눅 1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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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마음으로,
자기 자신의 유익만 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야 한다 (2:4, 고전 13:5).
* 겸손의 참 본이 되시는 분은 그리스도 예수이시다 (2:5-11, 마 11:29).
2. 예수님의 겸손 (2:5-11) – 예수님의 겸손은 사람의 겸손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가지신 분이 스스로 그것들을 다 내려 놓으신 분이시고
(고후 8:9),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면서 허망되이 스스로를 높이지 않도록 해야 하는 존재이다.
ㄱ.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다 (:6, 히 1:2-3).
* 하나님은 아무와도 그 영광을 나누지 않으시는데
(사 48:11), 예수님은 창세 전에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영화를 공유하셨다 (요 17:5). 즉,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
* 하나님의 고유이름이신 “스스로 있는 자” (I AM) (출 3:14)를 예수님은 자신에게 적용하셨다 (요 8:58).
* So, He “thought it not robbery to be equal with God.” (:6, KJV).
ㄴ.
그러하신 예수님이 겸손히 내려 오셨다
(:7-8).
*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을 때에도 그의 신성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에게는 육신을 입고 계실 때에도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 있으셨다
(요 1:14). 그리고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하실 수 없는 일을 하셨다
(요 15:24).
* 그러나, 참 사람으로
(딤전 2:5) 육신으로 그 영광을 가리셔서,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흠모할 만한 것이 없어보였고 오히려 멸시를 받으셨다 (사 53:2-3).
--
사람과 같이 되셨을 뿐 아니라
(:7), 자기 백성 사람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않으셨다 (히 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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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는 종인 천사들(히 1:14)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으셨다”
(히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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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종으로 오셨고 (사 42:1-4, 마 12:17-21),
섬기려 오셨다
(마 20:28, 막 10:45).
* 예수님은 그 영화를 잠시 내려/가려 놓으신 것이다
(요 17:1-5).
* 그리고,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생명을 내려 놓으셨다 (요 10:17-18, 참 요 13:4 - τίθημι (tithḗmi, ‘벗는다’=’생명을 내려 놓는다’). 육신의 몸이 저주스러운 죽음을 죽기까지 그는 겸손히 순종하셨다
(2:8).
ㄷ.
그러나 그는 능력으로 부활하셔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하셨고
(롬 1:4), 다시 영광의 자리에 앉으셨다 (2:9-11, 사 45:23). 예수님에게는 모든 무릎이 꿇는 “주님” (LORD) 이라는 이름이 있다.
예수님이 곧
LORD JEHOVAH 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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