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율법과 복음의 비교 (:1-4)
ㄱ. 히브리서 기자는 먼저,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간절히 주의하여 받아야 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1).
· 1절에 나오는 ‘간절히 삼가라’ (prosecw, prosecho, give attention to/apply oneself to)
라는 말은 ‘생각과 노력을 바친다’라는 뜻이 있는데, 이 말은 3절의 ‘등한히 여기는’ (amelew, ameleo, be careless) 라는 말과 대조되고 있다. 후자의 표현은, 마 22:2-14에 나오는 예수님의 천국 잔치 비유에 임금의 초대를 ‘돌아보지도 않은’ 사람들의 태도를 가리키는 데에 사용된 말이다.
·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시하는 태도의 결과는 ‘흘러 떠내려가게 되는’ (pararruew, pararrhueo, flow
by) 것이다. 이 말은 선원의 부주의 또는 무의식 중에 항구에 정박해 있던 배가 점차 표류하게 되었다는 뜻이 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멀어 지는 것은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현상보다는, 점차 부지부식간에 죄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ㄴ. 구약의 말씀(:2)
· 2절에서 구약의 말씀을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라 했다 (행 7:53, 갈3:19). 구약의 말씀도 하나님께로 부터 계시된 말씀이지만, 그 때는 수건으로 덮은 것과 같은 계시이었다 (고후 3:13-16). 아들을 통해 직접 주신 말씀은 수건을 벗은 계시의 말씀이다 (고후 3:14).
· 구약의 말씀도 잘못 받으면 그에 공변된 보응이 있었다 (:2). 말씀을 잘못 받는 것에는 범죄함과 불순종이 있었다.
· ‘범죄함’ (parabasiV, parabasis, transgression) –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경계선을 넘는다’는 뜻이다.
· ‘불순종’ (parakoh, parakoay, disobedience/inattention) – 하나님의 말씀에 부주의하거나, 듣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 듣지 않고 불순종하는 것을 뜻한다.
ㄷ. 신약의 복음 (:3-4) – 복음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큰 구원’의 좋은 소식 (참: 눅 2:10)인데, 이 말씀은 천사들로 하신 수건에 덮인 말씀보다 더 드러나게 하나님을 알린 말씀이므로, 이 말씀을 등한히 하면 그 결과가 더 중대하다.
· 복음의 원점은 예수 그리스도이셨다(:3, 막 1:1)
· 복음의 전달 –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사도들이 그 증인이 되었다 (행 1:21-22, 10:41-42, 고전 9:1, 요일 1:1-2).
· 복음의 확증 – 하나님께서 따르는 표적과 기사와 능력과 은사로, 사도들의 전하는 말씀이 참인 것을 증거하셨다 (막 16:20, 행 2:43, 4:30, 5:12, 6:8, 14:3,
15:12, 롬 15:18, 고후 12:12)
2.
복음의 대상 (:5-18) – 복음은 천사를 위해 주신 것이 아니고,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사람을 만유의 후사로 회복시키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ㄱ. 복음과 천사
· 복음의 내용과 시기에 대하여는 천사들도 알지 못했고 (벧전 1:12), 예수님이 오신 말세에 와서 교회를 통하여 그 비밀이 천사들에게도 전해지게 되었다 (엡 3:9-10).
· 복음의 유익 – 즉, 오는 세상의 후사가 되는 것은 천사를 위한 것이 아니다 (:5, 16).
· 그러나, 천사는 복음의 시작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찬양하고 (눅 2:13-14), 또 복음을 받아 사람이 구원되는 역사를 기뻐한다 (눅 15:10).
ㄴ. 사람을 존귀하게 창조하심 (:6-8, 시 8:3-8)
·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되, 창조물 중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 (창 1:26-27).
·
시 8:5에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에서 ‘천사’라고 번역된 말은 원어에 ‘엘로힘’ (אֱלֹהִים), 즉 ‘하나님’
또는 ‘신들’이라는 뜻의 말이다.
이것이 70인역에 ‘천사들’이라고 번역되었었다.
· 이와 같이 하나님은 사람에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쒸우시고, 만물을 다스리는 복을 주셨다 (창 1:28-29).
· 그런데, 사람이 범죄함으로, 이 권세를 상실한 것이었다 (:8, 창 3:17-18, 롬 8:18-22).
ㄷ.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셨다 (:9)
· ‘엘로힘’ (אֱלֹהִים) 보다 잠간 동한
못하게 하심을 입고 오셨다. 이렇게 낮아지시되
스스로 기꺼이 하신 것이다 (빌 2:6-8, 요 10:17-18).
· 사람의 연약함을 갖고 오셔서, 목마르기도 하시고 (요 19:28) 주리기도 하시면서 (마 4:2,
21:28, 막 11:12, 눅 4:2), 다른 사람처럼 하나님께 의지하여야 하셨다 (:13, 사 8:17). 그는 우리의 고난을 체휼하시는 분이 되셨고 (히 4:15), 우리의 질고를 겪음으로 아시는 분이 되셨다 (사 53:3-4).
· 혈육에 함께 속하셔서 (:14) 죽음을 맛보시었다 (:9).
하나님께 속한 자는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해야 한다 (요일 4:2).
요일 4:3에 이미 경고한 바와 같이, 예수님의
인간으로 오심을 부인하는 이단 사상들이 역사에 많이 일어난 바 있다 – 2세기 말엽에 일어난 Docetism
(예수님의 육신은 실체가 아니고 하나의 illusion 이라 함),
Monophysitism (단성론: 예수님의 신성은 인정하나, 인성은 인정하지 않음 – 여러 동방 정교의 입장).
· 혈육을 입으셨으므로, 거룩하게 함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셨다 (:11).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을 형제와 자매, 즉 가족으로 여기신다 (마 12:50,
막 3:35).
· 죽음의 고난과 부활을 통해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시고, 만유의 후사가 되시었다 (1:2, 엡 1:20-22, 빌 2:9-11)
ㄹ.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심의 유익
· 예수님은 육신을 입으셨기 때문에 죽으실 수 있었고, 그의 죽으심으로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물리치셨다 (:14, 요 12:31, 16:11, 요일 3:8, 계 20:10). 예수님께서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같이, 그를 믿는 우리도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어 죄로 우리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롬 6:10-14).
· 사망의 두려움으로 부터 그 믿는 자들을 자유케 하셨다 (:15, 요 8:31-32). 사망의 두려움은 죄로 인해 오는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 함에 근거한 것인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더 이상 정죄함이 없으니 (롬 8:1)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것이다 (롬 8:2).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도에게는 죽음도 유익함이 된다 (빌 1:21).
·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님의 형제된 우리에게 선포되고 (:12), 우리는 그 이름으로 일컫는 자가 되었다 (사 43:5-7, 단 9:19, 행 11:26).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도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는 그의 사신이 될 수 있다 (고후 5:18-20).
· 우리는 또한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가 되어 예수님의 형제가 되었으며 (:11), 하나님을 (예수님의 몸된) 교회 중에서 찬송하게 되었다 (:12).
· 우리의 고난과 연약함을 체휼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도우신다 (:17-18, 히 4:15).
·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영광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10). 죄로 인해 잃었던 만물의 후사의 자격을 예수님 안에서 되 찾는 것이다 (롬 8:16-17).
ㅁ. 예수님을 통해 받는 유익의 대상 – 제한된 속죄와 구원 –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고 오셨다 (:16)
· 예수님이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는 자들(:11),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13, 사 8:18) 곧 ‘교회’(:12)가 예수님을 통해 오는 유익의 대상이다.
·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오며 (요 6:37), 또 그들 중에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받는다 (요 10:28-29).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 누구인지 아시며 (딤후 2:19), 하나님이 심지 않으신 가라지는 뽑힘을 당할 것이다 (마 1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