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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례 요한의 사역자로서의 자세
ㄱ. 유대인들의 세례 요한에게 나와 던진 질문은 그의 정체성과 권위에 관해서 였다 (:19-25). 특히 그가 무슨 권위로 세례를 주는 가 하는 것이었다.
ㄴ. 이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려 하고, 자기의 자격있음을 부각시키지만, 세례 요한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ㄷ. 세례 요한의 답
·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20) – 실제로 백성들은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세례 요한이 바로 그 메시야인가 생각하고 있었다 (눅 3:15). 그러나 세례 요한은 숨기지 아니하고 드러내서 말하기를 자기가 그리스도가 아니라 했다.
· 엘리야가 아니라고 했다 (:21).
n 유대인들은 생각하기를 구약의 엘리야가 다시 환생하여 오리라고 생각하였다. 세례 요한의 대답은, 그런 의미에서 자기가 엘리야가 아니라는 말이다.
n 세례 요한은 말 4:5-6에 예언된 대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와서 (눅 1:17),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외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례 요한은 오리라고 예언된 엘리야이었다 (마 11:14, 막 9:13).
· (그) 선지가(ὁ προφήτης)가 아니라고 했다 (:21).
n 헬라 말에는 부정관사(a,
an)가 없고, 명사에는 정관사(the, ὁ)가 붙으므로, 유대인들의 질문이 신 18:15에 모세가 예언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의미하는지, 그냥 일반적인 선지자를 의미하는 지는 확실하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모세가 말한 “나같은 선지자”는 바로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호칭이었다 (행 3:20-24).
n 예수님은 세례 요한은 “선지자보다 나은 자”라고 하셨다 (마 11:9, 눅7:26).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역은 이와 같이 고귀한 사역이었다.
·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했다 (:23).
n 사 40:3-5에 예언된 말씀이 이루어졌음을 가리킨다.
n “소리”라고 함은 사역자 자신은 온전히 감추어 지고, 전해지는 하나님 말씀만 드러내려 함이다.
n 전도자는 청중을 의식하고, 청중의 귀에 듣기 좋은 말을 하기가 쉽다. F. B.
Meyer 라는 영국의 설교자가 미국에 와서 집회를 인도하였을 때에, 미국의 부호인 John Wanamaker 가 제안하기를 자기가 큰 성경학교와 강당을 지어 줄 터이니, 자기가 있는 Philadelphia 로 와서 사역하라고 했다. 그 때 Meyer 는 대답하기를 “만일 그렇게 하면,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 못 되고 Wanamaker 의 사람이 됩니다”라고 하며 거절하였다 한다. 말씀 전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이 듣기에 좋은 소리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n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으므로, 외치시는 분 (곧 하나님)이 명하시는 대로 소리를 발할 뿐이었다.
ㄹ. 세례 요한의 사역자로서의 자세
·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27)
n 전도자들은 흔히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종의 자격이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자처한다. 그리고, “종”이라는 직분이 무슨 높고 고귀한 직분인 것 처럼 행새하기도 한다.
n 그러나, 세례 요한은 자신은 종의 자격도 없다고 고백한 것이다. 올바른 종의 자격은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하는 순종인데 (눅 17:10),
우리는 얼마나 순종을 잘 하는가? 올바른 종의 모습은 오히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셨다 –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히 5:8-9, 빌 2:7-8).
n 종은 시키신 일을 다 한 후에 자기는 그저 “무익한 종”이라는 고백이 있어야 한다 (눅 17:10).
그리고 맡겨진 일에 충성하여야 한다 (고전 4:2).
·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3:30).
n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세례 요한의 경쟁자로 생각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세례 받으려고 요한에게 오지 않고 예수님께로 감을 요한에게 보고하였다 (3:22-26).
n 그러나, 세례 요한은, 교회인 신부를 맞을 신랑이 자기가 아니고,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자기에게는, 신랑이 신부를 취하는 것을 보고 얻는 신랑의 친구의 기쁨이 있다고 했다 (3:29). 사도 바울도 같은 마음으로 사역함을 언급하였다 (고후 11:2).
n 이와 같이 사역자는 사람들의 관심이 사역자에게 있지 않고, 오직 예수님에게만 고정되도록 하여야 한다. 오히려, 사역자는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처럼 (고전 4:13) 비방을 받고, 미말에 놓임 당함을 (고전 4:9) 달게 받아야 한다.
n 백성을 효유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은 헤롯은 충이 먹어 죽었다 (행 12:21-23).심지어는, 모세와 아론도 므리바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지 아니하여 범죄함으로 꾸중을 듣고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신 32:50-52, 민 27:14).
2.
세례 요한의 예수님에 관한 증거
ㄱ.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29)
· 여기서 예수님께서 “어린양”이라 함은 유월절 어린양과 같음을 가리킨다 (고전 5:7, 벧전 1:19).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단번에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드리신 것이다 (히 7:27,
9:12,28, 10:10).
· 여기서 “지고 가는”이란 말은 ὁ αἴρων으로, 세상 “죄의 짐을 담당하신다”는 뜻도 있고 (벧전 2:24, 사 53:5) 세상 “죄를 용서하시고 사하신다” (takes away) 는 뜻도 있다 (민 14:18, 삼상 15:25,
미 7:18). 그리스도께서 그를 믿는 자의 죄 짐을 담당하시고 죄를 사하시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롬 8:1).
· 또한 “세상” 죄를 지고 가신다 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의 죄 만을 사하러 오신 것이 아니고, 이방인들에게도 죄사함을 주시려고 오신 것임을 증거한다 (롬 1:16,
10:12, 고전 1:24, 12:13).
ㄴ.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시다 (:26,33).
· 물 세례는 성례의 하나로서 (다른 하나는 성찬)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한 표이다.
n 우리의 죄가 씻겨 지고 우리가 구원받음의 표이다 (벧전 3:21, 행 2:38)
n 우리의 죄된 옛몸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우리가 새 생명으로 살게 되었음의 표이다 (롬 6:4-6, 골 2:12)
n 우리가 이제는 그리스도로 옷 입고, 그 안에 있는 모든 복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릴 수 있음의 표이다 (갈 3:26-27)
· 요한은 자기가 물 세례를 준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했다 (:31).
n 요한이 예수님께 물세례를 베풀 때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예수님 위에 머물렀다.
n 비둘기는 예수님의 온유하신 초림 역사에 대한 표상이라 할 수 있다. 사 42:2-3에 예언된 대로,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참: 마
12:18-21).
· 성령으로 (έν πνεύματι ἁγίῳ) 세례를 주신다는 뜻은? – 물 세례가 표시하는 죄 씻음과 예수님의 몸에 접붙임 받음의 실제적인 효력은 그리스도 안에서 있는 것이고, 이는 또한 성령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다 (고전 12:13). 예수님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세례의 실제 효력을 주시는 분이시다라는 말씀이다.
ㄷ.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34).
· 예수님은 위/하늘로 부터 오시어서 만물 위에 계신 분이시다
(3:31).
n 반면, 요한 자신은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사역자도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사역하지만 (고전 4:1), 그 사역이 예수님의 사역과 비교될 때 땅에 속한 것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n 그래서 히 12:25에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땅에서의 경고라 하시고, 그리스도를 좇아 주신 은혜를 하늘로 좇은 경고하 하시었다.
· 예수님은 그 보고 들으신 것을 증거하신다
(3:32).
n 그래서 1:18에 예수님은 하나님을ἐξεγήσατο (엨세게이사토, exgeted), 즉 강해하신다고 했다. 이 말의 뜻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고한다는 것이다.
n 실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명하여 주신 말씀만을 말씀하시었다 (요 12:49).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요 (3:34), 예수님의 증거를 받는 것은 그 증거를 하신 하나님이 참되시다고 보증하는 것이다 (3:33).
n 반면에, 그리스도의 증거를 받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거짓말 하시는 이로 여기는 큰 범죄이다 (요일 5:10).
n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만 하신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였다 (3:34). 예수님에게는 성령을 한량없이 (without measure) 주시었다. 반면, 성도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according
to the measure of Christ’s gift) (엡 4:7) 은혜를 주시었다. 성도는 지체로 정해진 분량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롬 12:3-5,
고전 12:12-27).
·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손에 만물을 다 주시었다 (3:35).
n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에게 심판의 권세를 주시었다 (요 5:22).
n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주시었다 (요 17:12).
그리하여, 하나님의 것이 예수님의 것이요, 예수님의 것이 하나님의 것이다 (요 17:10).
n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셨다 (요 13:3). 특히, 구원 사역을 맡기셔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시고 (요 17:2),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만이 아버지 하나님을 알 수 있다 (마 11:27).
n 아들 예수님에게 주신 자들은 그를 믿고 영생을 받는다 (3:36). 반면 그를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다 (3:36). 믿음의 반대는 불순종이고, 영생의 반대는 하나님의 진노가 머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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