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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례요한의 증거 (:6-8, 15)
ㄱ. 예수님의 오심은 구약에 예언하신대로 오신 것이다. 성경학자들에 따르면, 구약에 예수님의 초림에 관한 예언은 모두 564번 나온다 (박윤선 박사의 요한복음 주석에서).
ㄴ. 세례요한은 구약의 선지자의 종결이고 (마 11:9-11), 예수님의 초림 전에 그 길을 예비하리라로 예언된 그의 사자이다 (말 3:1, 사
40:3-5).
n 말 3:1에 보면, 그 사자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리라 하였는데, 그 말씀의 성취는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으로 되었다. 즉, 예수님이 바로 만군의 여호와시라는 말씀이다.
n 요한은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었다 – 하나님께 보내심 받음은 모든 사역자가 반드시 가져야 할 자격이다 (히 5:4).
n 또한 그 이름 “요한”은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하나님께서 태어나기 전에 지어주신 것으로 (눅
1:13-20), 히브리 이름 ‘요하난’(Johanan, 대상 3:15) 또는 ‘여호하난’
(Jehohannan)에서 나왔으며, 그 뜻은 “여호와의 은혜”이다. 그가 예비하는 길을 통해 오실 예수님으로 많은 사람에게 미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한다 하겠다.
ㄷ. 세례요한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 즉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메시야로 성육신하시기 전에 오는 엘리야와 같은 인물이다 (말 4:5, 막
9:11-13). 그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서 사역하였고 (눅 1:17), 그의 옷차림이나 행색이 흡사 엘리야와 같았다 (마 3:4, 막 1:6 ß à 왕하 1:8).
ㄹ. 세례요한의 메시지 (:7,15)
n 세례요한은 육신적으로는 예수님보다 약 6개월 전에 태어났다 (눅 1:26)
n 그러나,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먼저 계심”을 증거하였다. 예수님의 전재성 (Pre-existence), 즉 하나님으로서 먼저 계심을 증거한 것이다.
n 요한은 “빛”에 대하여 증거하여 모든 사람으로 믿게 하고자 한 것이다.
2.
성육신하신 예수님 (:14, 16-28)
ㄱ. “말씀이 육신이 되어” (:14, 요일 4:2)
n 육신이 되시었다 함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죽음을 맛보아야 하는 인간이 되시었다는 것이다 (시 78:39, 사
40:6-7).
n 또한,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육체를 입으셨다는 것이다 (요일 1:1).
n 예수님은 참 신과 참 사람이 되셨고, 신성과 인성을 각각 갖게 되셨다. 사람이 되셨으나, 예수님의 신성이 사그라지거나 없어진 것이 아니었다.
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14)
n “거하시매” 라는 말은 ‘장막을 치시매’ (ἐσκήνωσεν, 에스케이노우센, tabernacled/tented)란 뜻으로 잠시/임시적으로 육신을 입으신 것을 나타낸다.
n 여기서 “우리”라 함은 예수님의 영광, 즉 아버지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본 사람들을 가리킨다 (요일 1:1). 즉, 그의 교회 가운데 거하신 것이었다.
n 선지자들로 예언하신 것을 (사 7:14, 슥 2:11,
8:3,8) 이루셔서, 임마누엘 하나님 이심을 보이신 것이다 (마 1:23).
ㄷ.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
n 예수님의 가지신 독생자의 영광은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지셨던 영광이고 (요 17:5),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다 (히 1:3). 예수님 만이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시므로 (히 1:3), 독생자의 영광이 그에게 합당하다.
· 성도도 하나님의 자녀로 주 안에서 세상의 빛이지만 (엡 5:8, 마 5:14), 우리는 양자의 영을 갖고 양자의 영광을 갖는다 (롬 8:15)
n 또한 예수님은 독생하신 하나님으로 아버지 품 속에 계신 분이시다
(:18). 즉, 하나님의 모든 오묘한 비밀을 다 알고 계신 분이시다 (참: 성령하나님이 그러하시듯이 – 고전 2:10)
n 그 영광이 예수님의 입으신 육신으로 어느 정도 가리워져서, 지금은 “거울을 보는 것 같이” 보는 영광이다 (고후 3:18).
ㄹ. 하나님을 나타내셨다 (:18)
n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 하나님은 아무도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신다 (딤전 6:16).
· 때때로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시기도 하셨지만, 온전히 드러내신 것이 아니었다 (창 32:30, 신 34:10, 출
33:22-23). 구약의 성도들은 오실 메시야를 통하여 드러내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았고,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때를 보았다고 하셨다 (요 8:56).
n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 여기서 “나타내셨느니라”는 말은 ἐξεγήσατο (엨세게이사토, exgeted)로, 즉, 강해하셨다는 말이다. (ἐξεγήεομαι 라는 동사는 눅 24:35, 행 10:18,
15:12,14, 21:19 에서도 쓰였는데, 자기의 보고, 듣고, 경험한 바를 고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해 여러 모양, 여러 부분으로 나타내셨던 것과 달리, 독생하신 하나님이 직접 나타내셔서 (히 1:1-2),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풀어서 가르쳐 주신 것이다.
·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시며 자신을 통해 직접 하나님을 드러내신 것이다 (요 14:7-9).
ㅁ. “은혜 위에 은혜러라” (χάριν ἀντὶ χάριτος) (:16)
n 여기서 “위에”라고 번역된 말은 ἀντὶ 라는 전치사인데 χάριτος 같은 genitive 명사와 쓰일 때 “… 대신에” (instead of), “… 자리에” (in
place of), “… 과 교환하여” (in exchange of) 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은혜 위에 은혜”라는 번역보다 “은혜 대신에 은혜”라는 번역이 본 뜻에 더 가까왔을 것 같다.
n 사도 요한은 “은혜 대신에 은혜”라는 표현을 통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주셨던 “은혜”와 예수님으로 드러난 “은혜”를 비교하고 있다 (참고: 고후 3:6-18에서 옛 언약과 새 언약의 비교)
· 그전에 주셨던 은혜란 모세를 통해 주셨던 율법을 가리킨다. 율법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날 참 은혜의 그림자가 있었을 뿐이었다 (골 2:17).
· 예수님이 가져오신 은혜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즉, 모든 은혜의 근원이 되신 예수님이 가져오신 것이다. 더 이상 수건으로 가리워진 것이 없는 은혜이고, 정죄하는 율법이 아니고 살리게 하는 영의 은혜이다 (고후
3:6-18).
· 이 새 은혜에 관해선 렘 31:31-34에 “새 언약”이라고 약속하신 바 있다.
+ 하나님의 법을 그 백성의 마음에 기록하여,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
+ 하나님께서 그 백성의 죄악을 용서하시겠다는 약속.
3.
예수님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
(:9-13) – 예수님은 참 빛으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예수님은 각 사람에게 빛을 비추시었다 –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를 통해.
ㄱ. 세상은 그를 알지 못했다 (시 14:2-3, 고전 1:21 상). 그리고, “자기 백성”, “자기 땅”이라 할 수 있는 이스라엘에 오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 (사 1:3).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살후 3:2).
ㄴ. 누가 예수님을 영접하는가?
n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 (:13), 즉 위로 부터 난 거듭난 자들 (요 3:3,5)
–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에 따라 그 백성을 선택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그들을 낳으셨다 (약 1:18). 이와 같이 우리가 썩지 아니할 씨로 거듭 난 것은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된 것이다 (벧전 1:23).
n 이런 자들만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는다 (:12).
n 결국,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셔서,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것이다 (엡 2:8).
· 이 권세 (ἐξουσίαν τέκνα θεοῦ
γενέσθαι, power/authority/claim to become children of God)는 우리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는 권세요 (롬 8:15), 그에게 담대하게 나아가게 하는 권세요 (히 4:16), 후사로서 성도의 기업의 한 부분을 얻어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게 하는 권세이다 (골 1:12, 롬 8:17).
n 이 과정에,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은 전혀 관계가 없다 (:13).
·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랑하였으나 (요 8:33,39), 그런 혈통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능히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다 (마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