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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July 22, 2015

빌립보서 1장 12-30절 - 성도의 기쁨 (2): 복음의 진보를 기뻐함

1. 성도의 기쁨 (2): 복음의 진보를 기뻐함 (:12-19) –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자기가 감옥생활을 하는 것을 슬퍼할 빌립보 교인들에게, 오히려 자기의 매임은 복음의 진보를 가져 왔으므로 자기는 기뻐한다고 했다.

ㄱ.   시위대 안에서 복음 전파 (:13)
·         여기서 시위대 (πραιτώρωον, 프라이토리온) 궁중에서 황제를 지키는 근위대를 가리킨다. 시위대는 BC 27 가이사 아구스도에 의해 시작된 , 영향력이 점차 커져서, 바울이 빌립보서를 즈음에는 시위대에서 지지하거나 지명한 사람이 황제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바울이 로마에 끌려 갔을 죄인으로 시위대에 넘겨지게 되었다 ( 28:17).
·         바울은 쇠사슬” ( 28:20, 6:20) 매인 되었는데, 쇠사슬 (αλυσις, 할루시스) 짧은 쇠사슬로 병사와 죄수가 같이 묶여 있는 쇠사슬이었다 ( 28:16). 병사는 순번마다 교대하므로, 자연히 바울은 여러 병사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기회가 생긴 같다. 또한 병사들을 통하여 궁중 안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드러나게 되었을 것이다 (:13, 4:22).
·         이와 같이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 갖혔을 때에도 감옥의 간수와 식구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되었었고 ( 16:23-34), 요셉도 감옥에 갖혔을 전옥에게 은혜를 입어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심이 드러났고 ( 39:20-23), 다니엘도 사자굴에 던지움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었다 ( 6:16-27)

ㄴ.    또한 바울의 매임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하였다 (:14).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하였고, 다른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순전치 못하게 그리스도를 전파하였다 (:15-17).
·         성도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인하여 매임이 되고 핍박을 받는 것은, 핍박을 받는 사람에게도 기쁨이 되는 일이고 ( 5:41, 5:11-12), 또한 그것을 보는 다른 성도들에게도 권면이 되는 일이다 (:14).
·         사도 바울은 변질된 복음이 전해지는 것은 절대로 기뻐하지 않았다 ( 1:6-10). 그렇다면, 여기서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한 사람들도 전한 내용은 올바른 내용을 전했을 것이다. 내용은 올바랐으나, 동기는 순전하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올바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 중에도 순전하지 않은 마음으로 전하는 사람도 있음을 있다. 하나님은 악인의 악행도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이루시는데 쓰실 있다 ( 50:20).
·         어떠한 동기로 전하였건 간에, 그리스도가 전해지면 바울은 기쁜 것이었다.

ㄷ.   그리스도가 전파되어 잃었던 영혼이 돌아오게 되는 것은, 땅에서도 기쁜 일이고, 하늘에서도 기쁨이 되는 것이다 ( 15:7,10,32).

ㄹ.   또한 바울로 구원에 이르게하는 것이 되었는데 (:19), 여기서 구원(σωτηρία, 소테리아)이란 말은 구원에 관계된 모든 유익한 것으로 이해가 된다. 8:28 말씀과 같이 감옥에 매임도 유익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게 하는 데에 필요한 것은 중보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이다 (:19). 그래서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여러 교회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할 것을 부탁하였다 (고후 1:11, 6:19, 15:30-32, 살전 5:25, 살후 3:1-2, 1:22).

2. 생사를 초월한 (:20-26)

ㄱ.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21) – 바울에게 있어서 삶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었다.
·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고후 5:17), 복음의 훼방자가 변하여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일군이 되었다 (딤 1:12-13).
·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의 것으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죽는 자이었다 ( 14:7-8). 그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사는 삶이었다 (:20). Charles John Ellicott 이란 주석가는 해석하기를 바울이 20절에서 말하는 것은 “My body will be the theatre in which Christ’s glory is displayed.”이라 했다.
·         그의 삶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었고 ( 2:20),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며 ( 1:24, 벧전 4:13), 또한 장래에 그의 영광에도 참예할 것을 바라보는 삶이었다 ( 6:3-5,8).
·         삶의 가치관이 온전히 바뀌어, 그리스도 외의 모든 것은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길 있었다 ( 3:7-8). 그리스도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로와 삶이었다 ( 3:10).
·         예수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하고 ( 12:2), 그가 주실 상을 바라보며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갈 길을 달려가는 삶이었다 (딤후 4:7-8).
·         한마디로 말해서, 그의 삶의 어디를 보아도 그리스도의 향기/냄새가 나는 사람이었다 (고후 2:15).

ㄴ.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21).
·         위와 같이 사는 것이 그리스도 사람에게는 죽는 것도 유익하다 (:21).
·         바울에게 있어서 죽는다는 것은 떠나는” (αναλύω, 아날루오) 것인데, 말은 텐트/장막에서 로프를 풀고 말뚝을 빼어 걷어치운다거나, 정박했던 배가 로프를 풀고 닻 올리고 출항한다는 뜻이 있다. 베드로도 자신의 죽음을 육신의 장막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비유하였다 (벧후 1:13-14).
·         죽는 것이 유익함은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고 (고전 15:51-52, 살전 4:14-17),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됨을 뜻하기 때문이다 (:23, 23:43).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죽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23). (참고: 칼빈의 강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우리에게는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 있고 ( 28:20),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거하시나 ( 3:17), 거하심은 단지 소망 가운데 즐길 뿐이고, 아직 육체에 거하는 동안에는 주님에게서 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고후 5:6). 육신의 장막에서 벗어날 주님과 함께 있게 된다 (:23).)

ㄷ.   죽는 것도 유익하나 사는 것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함이다 (:24-26).
·         바울은 그의 사는 것을 24절에서는 επιμένω (에피메노, stay on)이란 말로, 25절에서는 μένω και συμπαραμένω (메노 카이 숨파라메노, abide and continue)이란 말을 써서, 언제든지 도와줄 있는 준비를 하고 대기해 있는 거함을 가리켜 이야기했다.
·         개인적으로는 죽는 것이 좋겠으나 (:23), 살고 죽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대로, 그의 백성에게 믿음의 진보와 기쁨이 되는 편으로 있기를 원했다.

3.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생활을 하라 (:27-30) – 여기서 생활하라 (πολιτεύομαι, 폴리튜오마이, behave as a citizen)’ 말은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라는 말인데, 우리는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 ( 3:20), 시민권에 합당한 생활을 하여야 한다.

ㄱ.   천국시민으로서 첫째 의무는, 마음과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다 (:27).
·         마음이라 함은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의 일치를 말하는데, 다시 말해서 믿음의 내용의 일치를 가리킨다. 성도들은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을 믿는 같은 믿음을 가졌다 ( 4:4-6).
·         뜻이라 함은 의지적인 단합을 말한다. 성도의 뜻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되옵기를 바라는 것이므로 ( 6:10),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뜻을 맞추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일 것이다 ( 3:3).
·         이와 같이 마음과 뜻을 가지고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 우리는 복음의 동역자 되어야 한다 ( 16:3,9,21, 고전 3:9, 고후 8:23, 4:3, 1:1,24).

ㄴ.   천국시민으로서 둘째 의무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딤후 2:2) 대적하는 , 사단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28). 환난을 받으며 담대할 있는 것은 우리의 대장 예수께서 이미 이기셨기 때문이다 ( 16:33).
·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같이 ( 2:8),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29).
·         고난을 받음으로 또는 고행을 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은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하나의 빙거/증거이다 (:28, 살후 1:4-5).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은 복이다 ( 5:10-12).

·         동시에, 성도를 핍박하는 것은 핍박하는 그들에게 멸망의 빙거이다 (:28, 살후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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