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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July 22, 2015

빌립보서 2장 보충교재 - 예수님의 인성

1.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의 모습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 ( 2:6-7).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실 수 있겠느냐며 거짓 경외를 보인 사람들이 있었다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는 적그리스도이다 (요이 1:7).

  . Marcionites – 예수님은 육신처럼 나타나신 영이라 했다구약과 구약의 하나님을 부인했다.
  . Manichees – 예수님은 육신이 아닌 하늘의 몸을 가지고 오셨다고 했다.

2. 왜 중보자 예수님(딤전 2:5)은 사람이 되셔야 했는가?

ㄱ.  예수님 아닌 모든 사람은 죄인이어서, 하나님께 스스로 나아갈 수 없었다 ( 3:23).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의 사역은 하나님 스스로만 감당하실 수 있었다 ( 10:6-7).
ㄴ.  육신을 입으셨기 때문에 죄의 댓가를 치르기 위해서 몸이 죽으실 수 있었다 ( 8:3-4, 벧전 3:18, 고후 13:4). 잠간 천사보다 못하게 되셔서, 죽음을 맛보셨다 ( 2:5-9). 그리고, 죽으심으로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없이하시고, 사망에 종 노릇하던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건지실 수 있었다 ( 2:14-16).
ㄷ.  육신을 입으셨으나, 성령으로 잉태하셨기 때문에 (1:35), 흠이나 점이 없는 양 같은 죄 없으신 분이시다 ( 4:15).
ㄹ.  그리고 하나님 이시기 때문에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사실 수 있었다 ( 1:4, 벧전 3:18, 고후 13:4).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가 되셨다 ( 1:18).
ㅁ.  육신을 입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실 수 있고 ( 4:15, 2:17-18), 우리를 형제로, 같은 상속자로 입양하실 수 있다 ( 8:17, 20:17, 2:11).
ㅂ.  그리고, 예수님은 약속하신 대로 오셔야 했다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사람의 아들 (인자),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다. ( 22:18, 26:4, 3:16, 1:1, 132:11, 2:30-31, 1:3; 3:15, 4:4). 예수님은 세세히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지만, 육신으로는 유대인으로 나셨다 ( 9:5).

3. 무슨 이유로 예수님은 사람이 되셨는가성경에서 가르치는 단 한 가지의 이유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한 희생제물로 바쳐지기 위해서였다.

ㄱ.  예수님 자신이 그렇게 증거하셨다 ( 3:14, 10:15,17-18, 12:23-28, 24:46-47).
ㄴ.  선지자와 사도들의 증거도 같았다 ( 53:4-8, 1:78-79, 9:11-12, 1:7, 딤전 1:15)

4.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 1:35 ), 또한 인자, 곧 사람의 아들 ( 18:31 )이시다성경에서 예수님을 묘사하는 구절 중, 어떤 구절은 그의 신성을 가리키고, 어떤 구절은 그의 인성을 가리키고, 어떤 구절은 그의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리킨다 (“communicating of properties”).

ㄱ.  예수님의 신성을 가리키는 구절들
n  8:58
n  1:15-17
n  17:5
n  5:17
ㄴ.  예수님의 인성을 가리키는 구절들
n  42:1
n  2:52
n  8:50
n  13:32, 24:36
n  14:10 (스스로 말을 안 하신다)
n  6:38 (자신의 뜻을 행하려 하지 않으신다)
n  24:39 (보이고 만지움)
ㄷ.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함께 가리키는 구절들 예수님의 구속주로서의 성격을 가장 잘 가르치는 구절들이다.
n  20:28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
n  고전 2:8 (영광의 주가 십자가에 못박히심)
n  요일 1:1 (말씀을 보고 만짐)
n  1:29, 5:21-23, 8:12, 10:9,11, 15:1


빌립보서 2장 보충교재 - 예수님의 신성

1.삼위일체

ㄱ.  한 하나님, 세 인격체 (persons/hypostases, persona, πρόσωπα(prosopa)) –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각기 완전한 하나님인데, 하나님은 한 분 뿐이시다이 세 인격체는 근본적으로 같다 (consubstantial; όμοουσίου (homoousios)), 그러나 각기 incommunicable quality에 의해 뚜렷한 구분이 있다.
ㄴ.  삼위일체에 관한 잘못 된 가르침
n  Arius –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다른 창조물처럼 창조되었고 시작이 있었다.
n  Sabellius –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칭호가 특별히 주는 의미는 없고, 단지 한 하나님의 여러가지 속성을 나타낼 뿐이다하나님이 강하시고, 선하시고, 공의로우시다고 말하듯이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간에 구분이 없다. (삼위일체를 물과 얼음과 수증기로 비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2. 하나님이신 말씀=그리스도 ( 1:1-3,14) – 하나님이신 말씀은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계신 지혜이신데 ( 8:22-31), 이 말씀으로 인해 모든 법도와 예언의 말씀이 사람에게 전해진 것이다.

ㄱ.  아들(말씀)의 영이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했다 (벧전 1:10-11).  이 아들(말씀)의 영은 곧 성령이시다 (벧후 1:21).
ㄴ.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하셨다 ( 1, 1:3).  또한 이 말씀(=그리스도)이 모든 창조물을 붙드시고 계시다 ( 1:1-3).
ㄷ.  이 말씀은 영원 전 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하나님이시다 ( 1:1-3).

3. 구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신성

ㄱ.  예수님의 이름 =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 ( 9:6), 임마누엘 ( 7:14)
ㄴ.  다윗에게서 나는 의로운 가지이신 예수님이 곧 여호와, 우리의 의이시다 ( 23:5-6).  “여호와”(I AM) 이름은 하나님에게만 드릴 수 있는 것이다 ( 3:14). 하나님은 이 영광스러운 이름을 다른 이에게 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 42:8); 즉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이런 이름을 받으실 수 없다.
ㄷ.  하나님의 성, 즉 하나님의 백성의 무리, 즉 교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이름은 여호와 삼마 (The LORD is there)이다 ( 48:35, 33:16).
ㄹ.  구약에 하나님의 사자로 나타나신 예수님은 곧 당신이 하나님이신 것을 나타내셨다.
n  삼손의 부모에게 나타나심 ( 13:15-23) – 번제를 받으심, 이름이 기묘라 말씀하심
n  야곱과 씨름하심 ( 32:24-30, 12:3-5)
n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반석 (고전 10:4)
n  2:3-5다른 천사” (9절 참조).
ㅁ.  말라기 선지자의 증언: 오실 주 (즉 예수님)께서 그의 전에 임하실 것이다 ( 3:1).  성전을 소유한 분은 하나님 뿐이시다; 그러므로 오실 주가 하나님이시다.

4.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신약의 사도들의 증언
 (1)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신약시대에 예수님께서 이루신 것을 사도들이 증거하여,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증명하였다.

ㄱ.  8:13-14: 여호와께서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다. à 9:32-33: 예수님께서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하는 자들에게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셨다.
ㄴ.  45:23: 여호와께 모든 무릎이 꿇겠다고 하셨다 à 14:9-12, 고후 5:10, 2:10: 모든 무릎이 심판주 그리스도 앞에 꿇을 것이다.
ㄷ.  68:18: 하나님께서 높은 곳에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를 이끄시겠다고 하셨다 à 4:7-8: 그리스도께서 위로 올라가시며 사로잡힌 자를 이끄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신다 했다.
ㄹ.  53:1, 6:1-5: 이사야가 본 것은 만군의 여호와의 영광이었고, 이것을 전했지만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고 했다 à 12:37-41: 이 말씀은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다.
ㅁ.  9:24: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만 자랑하라 하셨다 à 고전 2:2: 바울은 예수님과 그 십자가에 대해서만 알고 전하기로 했다 3:8: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 했다.
ㅂ.  요엘 2:32, 18:10: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받겠다 하셨다 à 10:9-11: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 스데반 ( 7:59).

 (2)히브리서 기자는 시편에 하나님에 대해 찬양한 말씀이 성자하나님에 관한 말씀임을 증거하였다:
ㄱ.  102:25 à 1:10
ㄴ.  97:7 à 1:6
ㄷ.  45:6-7 à 1:8-9
ㄹ.  102:25-27 à 1:10-12
시편의 하나님께 관한 찬양은 오로지 예수님만이 완성하셨다 102:13, 97:1

 (3) 바울 서신들의 인삿말은 은혜와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오는 것을 증거한다 ( 1:7, 고전 1:3, 고후 1:2, 1:3, 등등).  ,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로 하나님께 우리를 위해 구하시는 분이실 뿐 아니라, 그 구하는 바 유익한 것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으신 주인이시다.

 (4)그리고, 바울은 예수님이 바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다 라고 선포한다 ( 9:5, 2:9).  요한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요 영생이시다라고 증거한다 (요일 5:20).  예수님은 생육신하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 1:14, 딤전 3:16)

 (5)그래서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증거했다 (, 20:28).

5. 예수님께서 스스로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셨다.

ㄱ.  5:17-18 –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시고, 아버지 하나님과 같이 일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참조: 8:54)
ㄴ.  9:6 – 하나님 만의 고유 권세인 죄를 사하는 권세가 ( 43:25) 예수님께 있다고 하셨다.
ㄷ.  8:58 – 예수님께서 스스로 계신 자 (I AM) 여호와 이심을 증거하셨다.
ㄹ.  17:5 – 예수님께서 창세 전에 아버지 하나님과 영광을 함께 가지셨다고 하셨다.
ㅁ.  예수님께서 행하신 여러가지 이적이 또한 예수님의 신성을 증거하였다.
n  선지자들이나 사도들도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이들은 받은 능력을 가지고 이적을 행하였고, 예수님은 이들에게 이런 능력을 나누어 주시는 분이셨다 ( 10:8, 3:15, 6:7).
n  사도들은 이적을 행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였다 (, 3:6).
n  예수님의 사적이 예수님에 관한 가장 강력한 증거였다 ( 5:36, 10:37, 14:11)


빌립보서 1장 12-30절 - 성도의 기쁨 (2): 복음의 진보를 기뻐함

1. 성도의 기쁨 (2): 복음의 진보를 기뻐함 (:12-19) –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자기가 감옥생활을 하는 것을 슬퍼할 빌립보 교인들에게, 오히려 자기의 매임은 복음의 진보를 가져 왔으므로 자기는 기뻐한다고 했다.

ㄱ.   시위대 안에서 복음 전파 (:13)
·         여기서 시위대 (πραιτώρωον, 프라이토리온) 궁중에서 황제를 지키는 근위대를 가리킨다. 시위대는 BC 27 가이사 아구스도에 의해 시작된 , 영향력이 점차 커져서, 바울이 빌립보서를 즈음에는 시위대에서 지지하거나 지명한 사람이 황제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바울이 로마에 끌려 갔을 죄인으로 시위대에 넘겨지게 되었다 ( 28:17).
·         바울은 쇠사슬” ( 28:20, 6:20) 매인 되었는데, 쇠사슬 (αλυσις, 할루시스) 짧은 쇠사슬로 병사와 죄수가 같이 묶여 있는 쇠사슬이었다 ( 28:16). 병사는 순번마다 교대하므로, 자연히 바울은 여러 병사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기회가 생긴 같다. 또한 병사들을 통하여 궁중 안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드러나게 되었을 것이다 (:13, 4:22).
·         이와 같이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 갖혔을 때에도 감옥의 간수와 식구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되었었고 ( 16:23-34), 요셉도 감옥에 갖혔을 전옥에게 은혜를 입어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심이 드러났고 ( 39:20-23), 다니엘도 사자굴에 던지움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었다 ( 6:16-27)

ㄴ.    또한 바울의 매임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하였다 (:14).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하였고, 다른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순전치 못하게 그리스도를 전파하였다 (:15-17).
·         성도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인하여 매임이 되고 핍박을 받는 것은, 핍박을 받는 사람에게도 기쁨이 되는 일이고 ( 5:41, 5:11-12), 또한 그것을 보는 다른 성도들에게도 권면이 되는 일이다 (:14).
·         사도 바울은 변질된 복음이 전해지는 것은 절대로 기뻐하지 않았다 ( 1:6-10). 그렇다면, 여기서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한 사람들도 전한 내용은 올바른 내용을 전했을 것이다. 내용은 올바랐으나, 동기는 순전하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올바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 중에도 순전하지 않은 마음으로 전하는 사람도 있음을 있다. 하나님은 악인의 악행도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이루시는데 쓰실 있다 ( 50:20).
·         어떠한 동기로 전하였건 간에, 그리스도가 전해지면 바울은 기쁜 것이었다.

ㄷ.   그리스도가 전파되어 잃었던 영혼이 돌아오게 되는 것은, 땅에서도 기쁜 일이고, 하늘에서도 기쁨이 되는 것이다 ( 15:7,10,32).

ㄹ.   또한 바울로 구원에 이르게하는 것이 되었는데 (:19), 여기서 구원(σωτηρία, 소테리아)이란 말은 구원에 관계된 모든 유익한 것으로 이해가 된다. 8:28 말씀과 같이 감옥에 매임도 유익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게 하는 데에 필요한 것은 중보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이다 (:19). 그래서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여러 교회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할 것을 부탁하였다 (고후 1:11, 6:19, 15:30-32, 살전 5:25, 살후 3:1-2, 1:22).

2. 생사를 초월한 (:20-26)

ㄱ.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21) – 바울에게 있어서 삶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었다.
·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고후 5:17), 복음의 훼방자가 변하여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일군이 되었다 (딤 1:12-13).
·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의 것으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죽는 자이었다 ( 14:7-8). 그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사는 삶이었다 (:20). Charles John Ellicott 이란 주석가는 해석하기를 바울이 20절에서 말하는 것은 “My body will be the theatre in which Christ’s glory is displayed.”이라 했다.
·         그의 삶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었고 ( 2:20),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며 ( 1:24, 벧전 4:13), 또한 장래에 그의 영광에도 참예할 것을 바라보는 삶이었다 ( 6:3-5,8).
·         삶의 가치관이 온전히 바뀌어, 그리스도 외의 모든 것은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길 있었다 ( 3:7-8). 그리스도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로와 삶이었다 ( 3:10).
·         예수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하고 ( 12:2), 그가 주실 상을 바라보며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갈 길을 달려가는 삶이었다 (딤후 4:7-8).
·         한마디로 말해서, 그의 삶의 어디를 보아도 그리스도의 향기/냄새가 나는 사람이었다 (고후 2:15).

ㄴ.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21).
·         위와 같이 사는 것이 그리스도 사람에게는 죽는 것도 유익하다 (:21).
·         바울에게 있어서 죽는다는 것은 떠나는” (αναλύω, 아날루오) 것인데, 말은 텐트/장막에서 로프를 풀고 말뚝을 빼어 걷어치운다거나, 정박했던 배가 로프를 풀고 닻 올리고 출항한다는 뜻이 있다. 베드로도 자신의 죽음을 육신의 장막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비유하였다 (벧후 1:13-14).
·         죽는 것이 유익함은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고 (고전 15:51-52, 살전 4:14-17),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됨을 뜻하기 때문이다 (:23, 23:43).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죽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23). (참고: 칼빈의 강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우리에게는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 있고 ( 28:20),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거하시나 ( 3:17), 거하심은 단지 소망 가운데 즐길 뿐이고, 아직 육체에 거하는 동안에는 주님에게서 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고후 5:6). 육신의 장막에서 벗어날 주님과 함께 있게 된다 (:23).)

ㄷ.   죽는 것도 유익하나 사는 것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함이다 (:24-26).
·         바울은 그의 사는 것을 24절에서는 επιμένω (에피메노, stay on)이란 말로, 25절에서는 μένω και συμπαραμένω (메노 카이 숨파라메노, abide and continue)이란 말을 써서, 언제든지 도와줄 있는 준비를 하고 대기해 있는 거함을 가리켜 이야기했다.
·         개인적으로는 죽는 것이 좋겠으나 (:23), 살고 죽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대로, 그의 백성에게 믿음의 진보와 기쁨이 되는 편으로 있기를 원했다.

3.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생활을 하라 (:27-30) – 여기서 생활하라 (πολιτεύομαι, 폴리튜오마이, behave as a citizen)’ 말은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라는 말인데, 우리는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 ( 3:20), 시민권에 합당한 생활을 하여야 한다.

ㄱ.   천국시민으로서 첫째 의무는, 마음과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다 (:27).
·         마음이라 함은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의 일치를 말하는데, 다시 말해서 믿음의 내용의 일치를 가리킨다. 성도들은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을 믿는 같은 믿음을 가졌다 ( 4:4-6).
·         뜻이라 함은 의지적인 단합을 말한다. 성도의 뜻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되옵기를 바라는 것이므로 ( 6:10),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뜻을 맞추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일 것이다 ( 3:3).
·         이와 같이 마음과 뜻을 가지고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 우리는 복음의 동역자 되어야 한다 ( 16:3,9,21, 고전 3:9, 고후 8:23, 4:3, 1:1,24).

ㄴ.   천국시민으로서 둘째 의무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딤후 2:2) 대적하는 , 사단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28). 환난을 받으며 담대할 있는 것은 우리의 대장 예수께서 이미 이기셨기 때문이다 ( 16:33).
·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같이 ( 2:8),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29).
·         고난을 받음으로 또는 고행을 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은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하나의 빙거/증거이다 (:28, 살후 1:4-5).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은 복이다 ( 5:10-12).

·         동시에, 성도를 핍박하는 것은 핍박하는 그들에게 멸망의 빙거이다 (:28, 살후 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