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구원받은 성도 (:1-5,12-13)
ㄱ. 성도의 거처 (:1)
· 어린 양, 곧 우리의 구속을 위해 제물이 되셨던 예수님이 계신 곳이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곳이 곧 천당이다 (고후 5:8, 빌 1:23
· “시온산”은 하나님이 계셔서 통치하는 곳을 상징하고 (시 50:2,
2:6), 요동하지 않는 견고함이 있다 (시 125:1). 역시 천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히 12:22-24)
ㄴ. 성도의 성격 (:2-5)
· “그와 함께” – 예수님과 함께 하는 자는, 곧 그에게서 부르심을 받아 빼어냄을 얻고 진실한 자이고, 그 이유로 승리할 수 있다 (계 17:14)
· “십사만 사천” (계 7:4) –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을 상징하는 만수(滿數).
·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계 7:2-4) – 이들은 곧 하나님의 인, 곧 성령을 (고후 1:22, 엡 1:13, 4:30) 그 이마에 인침받은 자들로, 그들 이마에 있는 이름은 그들이 하나님의 소유이고 (:4),
“보배로운 백성”이며 (신 26:18), “특별한 소유”이며 (시 135:4), 또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대상임을 알린다 (사 43:1, 롬 8:16-17, 시 121:1-8)
· “새 노래”를 부른다.
n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하고 (삼하 22:14,
시 18:13, 29:3, 겔 43:2), 하늘에 있는 성도들의 소리이기도 하다 (계 19:6).
n 그 소리는 또한 거문고 소리 같았는데, 이는 그 소리가 무조화한 소음이 아니고, 곡조 있는 조화된 소리 같음을 가리킨다 하겠다.
n “새 노래”는 계 15:3에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로 표현되었는데, 이 노래는 구속을 온전히 받은 자들이 지나 온 홍해 같은 날들을 돌아보며 구원의 즐거움으로 부르는 찬송으로서, 그 내용은 (1) 하나님의 능력을 찬송함 (계 15:3, 출 15:2,3,6), (2) 하나님의 왕권을 찬양함 (계 15:3, 출 15:18),
그리고 (3)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함이다 (계 15:3, 출 15:11).
이 찬송은 구원의 희락이 없는 자는 부를 수 없다.
n 새 노래을 부르는 자들은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예하며, 기쁨이 충만할 것이다 (마 25:21, 시 16:11)
·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n 여기서 여자 (γυναικῶν, 여자들, 복수)는 세상주의의 유혹을 상징한다 (민 25:1,
31:16, 신 17:17). 결혼을 금하는 말씀이 아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다 (마 19:4-6,
창 2:18,21-24).
n “정절”이란 말로 παρθένοι (팔쎄노이, virgins, 처녀들)이란 말을 썼는데, 성도는 정결한 처녀로서 그리스도에게 나아갈 것이다 (고후 11:2)
·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 가는 자며”
n “어디로 인도하든지” (ὅπου ἄν ὑπάγῃ, wherever He leads)라는 말은 그 가는 곳이 따라가는 자들에게 미리 알려지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지시하시는 곳으로 떠나간 아브라함의 신앙이 (히 11:8, 창 12:1-4)
이런 신앙이었다.
n 광야 길의 이스라엘 백성은 불기둥, 구름기둥이 인도하는 대로 진행하였다 (출 13:21-22).
n 이와 같이 성도는 그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 그를 따라 가야한다 (요 10:3-4).
· “처음 익은 열매” – 성도는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무리라는 의미 (출 22:29).
·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
n 가장 큰 거짓말은 하나님과 그의 그리스도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과 (요일 2:22),
성도라 자칭하며 어두움 가운데 행하면서 자신은 죄가 없다고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요일 1:6,8).
n 또한 거짓말은 다른 사람을 속이어 내 이익을 도모하는 말인즉,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것이고 (잠
6:16-19), 의인도 미워하여야 할 것이고 (잠 13:5), 그것으로 이를 취하려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잠 21:6)
n 흠이 없다 함은 스스로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 보다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여 용서함 받아 (요일 1:7), 하나님 앞에 무흠자로 간주된 것을 가리킨다 (시 32:1-2). 예수님 외에는, 인간이 스스로 의롭다 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갈 5:4, 사 64:6, 시 143:2, 욥 9:2, 25:4)
· “주 안에서 죽는 자들” – 일생을 주 안에서 살다가 이생을 떠나간 자들로 예수님 재림 때에 (먼저) 부활할 자들이다 (참: 살전 4:16).
ㄷ. 성도의 인내(:12)는 궁극적으로 공의의 심판이 있을 것을 알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 믿음을 지키는 것에 있다. 성도의 인내의 결국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받아 천국에서 영복을 누리는 것이다(약 5:10-11, 히 6:12, 10:36,
눅 21:19).
ㄹ. 성도의 복(:13)
· 성도의 복의 확실함
n “기록하라” – 기록하라 함은 그것이 변개하지 않는 진실한 것임을 나타내는데 (참: 에 6:12, 단 6:8), 성도의 복은 왕의 조서보다 엄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되었다.
n 성령께서 또한 그것을 확증하신다. 성령께서 우리의 보증이시다 (고후 1:22).
· 성도의 복의 내용
n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 이 안식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바대로 이다 (마
11:28-30).
n 그리고 그 안식의 원인은 그 “행한 일이 따름”이기 때문이다. 이 행실은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성도들로 입게 하신 것이다 (계 19:7-8).
2.
세 천사의 복음과 심판의 선포 (:6-11) – 이것은 앞으로 19장까지 나올 세상 심판의 서론적 선포이다.
ㄱ. 첫째 천사의 선포(:6-7)
· “영원한 복음” – 하나님은 심판하시기 전 마지막까지도 복음을 세상 모든 백성에게 전하시게 하신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셔서 악을 용납하시지 않으시고 (시 5:4) 악인을 심판하시지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지 않으신다 (겔 18:23,32)
· 천사는 심판주이시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선포하였다.
ㄴ. 둘째 천사의 선포 (:8)
· 바벨론, 곧 17장의 “큰 음녀” (17:1-5), 자기만 범죄할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게 만들던 것이 심판받는 것을 선포하였다.
ㄷ. 셋째 천사의 선포 (:9-11)
·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 (계 13장 참조)의 심판을 선포하였다.
· 하나님의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 같은 심판이 예비되었다. 그 진노가 얼마나 강도 높은 것인 가를 가리키고 있으며, 16장부터 나오는 재앙이 “대접”에 담아 붓는 것으로 상징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진노가 남김 없이 쏟아 부어질 것을 가리킨다.
· 심판의 고난은 세세토록 영구하고, 쉼을 주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막
9:48-49, 사 66:24, 34:9-10).
3.
마지막 추수 (:13-20)
ㄱ. 알곡의 추수 (:13-16)
· 성전에서 나온 천사, 즉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는 천사의 명으로 추수가 시작되었다.
· “곡식이 다 익었”을 때 (욜 3:13), 즉 성도들의 수가 찼을 때 추수가 있게 된다. 알곡, 즉 성도는 하나님의 곡간, 하나님의 나라에 들이실 것이다 (마 3:12, 눅3:17).
· 추수하는 이는 흰 구름 위에 인자와 같으신 이가 면류관을 쓰고 이한 낫을 손에 드신 분으로, 이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듯 하다. 예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친히 거두시고 하늘나라로 영접하실 것이다 (살전
4:16-17, 요 14:3).
ㄴ. 포도의 추수 (:17-20)
· 포도의 추수 역시 포도가 익었을 때, 즉 죄악이 관영했을 때 될 것이다. 포도는 여기서 불신자들을 상징한다.
· 심판과 버리움의 대상인 불신자들은 천사로 거두게 하시고 심판하신다 (마 13:41-42).
· 불신자들이 포도주 틀에 밟힌다는 것은 심판으로 그들의 피를 흘리게 하신다는 말씀같다 (사
63:1-6). 그 포도주가 말 굴레까지 닿았다는 말씀으로 보아, 큰 전쟁으로 도살될 것을 암시하는 듯하고, 혹자는 이는 계 16:16에 나오는 아마겟돈 전쟁의 결과를 미리 암시하는 것이라 한다.
· 그 피가 1,600 스다디온에 퍼졌다 했는데, 1,600이란 수는 40을 제곱한 수로, 40은 최고의 형벌을 상징하는 수라고 할 수 있다 (참: 고후 11:24). 또는, 4는 세상을 상징하는 수로, 그 심판이 온 세상에 미칠 것을 가리키는 듯 하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