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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October 5, 2016

히브리서 11장 23~29 절 - 믿음의 증인들 (3)

 1.     모세의 신앙 (:23-29)

ㄱ.  모세의 부모의 신앙 (:23)

·      모세가 났을 때에 준수한”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았다 (:23, 2:2).
n  여기서 아름다운이란 말은 αστειος (asteios, 아스테이오스, proper/fair) 인데, 말의 어원은 시골 촌사람이 보기에 도시 (αστυ, 아스투) 사람의 세련되고 우아함(refined and polished) 나타내는 데서 왔다.
n  아름다움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것이었다 ( 7:20).
n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려 태에서 남으로 부터 선택하신 , 그리스도에 관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했다 ( 49:5). 참고: 사도 바울을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하시었다 하셨고 ( 1:15), 예레미야 선지를 태에서 나오기 전에구별하여 선지자로 삼으셨다 하셨다 ( 1:5).
n  모세의 부모 아므람과 요게벳이 ( 6:20) 어떻게 모세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선택된 아이인지를 식별하였는지는 모르나, 옛적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대로 ( 15:13-14), 또한 요셉이 죽으면서 다짐시킨대로 ( 50:24-25), 하나님께서 구원자를 세우사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가게 하실 것에 관한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n  부모된 우리들은 우리의 자녀를 무엇을 보는가? 우리의 자녀이기 전에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하나님의 자녀임을 보는가?

·      믿음의 표현은 바로의 명령( 1:15-16,22) 무서워 않고, 아이를 동안 숨겨 기른 것에 나타났다 (:23, 7:20, 2:2). 믿음은 모세를 달밖에는 숨기지 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것이었다.
n  모세나 태어날 즈음에 바로가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 아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 1:22), 비슷하게 예수님께서 나실 때에 헤롯은 베들레헴과 주변의 이하 모든 사내아이를 죽였는데 ( 2:16, : 12:4-5), 그런 중에도 하나님은 정하신대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었다.
n  모세의 부모는 스스로는 모세를 기를 없었으나, 하나님은 바로의 공주를 준비시키셔서, 오히려 어미가 삯을 받아가며 바로의 공주의 보호 아래 모세를 기르게 하셨다 ( 2:3-10). 공주는 모세가 히브리인의 아이임을 알고도 ( 2:6), 그에게 은총을 베푼 것이다. 비슷한 예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불신자에게 까지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고 은총을 받기도 하였다 느부갓네살과 다니엘 ( 2:47-49, 4:34-37), 느부갓네살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 3:28-30), 다리오와 다니엘 ( 6:19-27)

ㄴ.  모세의 믿음의 가치관 (:24-26)

·      모세는 40세에 ( 7:23) 장성한 사람으로 버릴 것을 버리고 택할 것을 택하였다. 때에 그는 이미 애굽의 모든 학술을 배워 말과 행사가 능하였고 공주의 아들로서 애굽의 영화를 겪어 보았었겠으나 ( 7:22), 자신은 그래도 히브리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고 ( 2:11 – “자기 형제들”)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나마 알았다 ( 7:25).

·      모세가 버린
n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n  죄악의 낙을 누리는
n  애굽의 모든 보화
n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방해가 되는, 이생의 자랑,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을 충족시키는 것들이었다 (요일 2:16).
n  참고: 중국 사기에 요나라의 임금이  천하를 허유에게 맡기고자 했더니, 허유는 귀가 더럽혀졌다고 하면서 시냇가에 가서 귀를 씻었고,  소부라는 사람은 소에 물먹이려 시냇가에 왔다가 허유가 귀를 씻은 물에는 소에게 물을 먹일 없다 하며, 소를 상류로 끌고 가서 물을 먹였고, 시냇물 주인은 말하기를 시냇물이 더럽혀졌구나라고 했다 한다. 세상 사람도 이생의 자랑과 권세가 헛된 것임을 깨닫는 경우가 있음을 가르쳐 주는 이야기이다.
n  반면, 에서는 팥죽 그릇에 (, 육체의 욕구를 잠시 만족시키는 것에) 하나님의 기업의 약속이 담긴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겨 팔아 버리고 ( 25:32-34, : 12:23 – “장자들의 총회”) 영원히 망령된(godless) 불명예를 얻었다 ( 12:16-17).

·      모세가 택한
n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
n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
n  바울도 그리스도와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 3:10) 라고 하였다.
n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핍박과 고난은 우리에게 복이다 ( 5:10-12, 5:40-41, 벧전 4:13-14).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족히 비교할 없으니 ( 8:18), 우리가 받을 영광은 그리스도와 함께 받을 영광이기 때문이다 ( 8:17). 모세는 영광, 상을 바라본 것이다 (:26). 상을 당장 받지 못했지만, 상에 대한 약속을 신뢰한 것이 믿음이다.

ㄷ.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 (:27)

·      믿음으로 애굽을 떠날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했다 (:27).
n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아 (벧전 5:8), 믿는 자라도 두렵게 함으로 넘어뜨리려 한다.
n  바로의 병거와 마병과 군대는, 홍해 앞에 도망갈 길도 없는 이스라엘을 향해 노함으로 달려왔다 ( 14:5-9).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서워서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 광야에 끌고 나와 죽게 하느냐고 불평하였다 ( 14:10-12).
n  그렇게 위험이 급박한 상황에서 모세는 백성들에게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 했다. 오늘 애굽 사람을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했다 ( 14:13-14). 그리고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팡이를 바다 위로 내밀어 이스라엘 자손으로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게 하였다 ( 14:15-22). 믿음의 지도자는 백성들도 믿음의 행위를 하게 하였다 (:29).
n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같은 편이어야 백성들이 오히려 원망하고 상해하려는 때가 종종 있다. 홍해를 지나 얼마지나지 않아 르비딤에 이르렀을 마실 물이 없자,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고 거의 그에게 돌질하기에 이르렀다 ( 17:1-4). 때도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답을 얻었다.
n  다윗도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블레셋 땅에서 거하던 시글락이 아말렉의 공격을 받아 가족과 재산을 잃었을 때에 오히려 백성들이 다윗을 돌로 쳐서 죽이려 하였다 (삼상 30:1-5). 이와 같이 군급한 상황에서도, 다윗은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다 (삼상 30:6).

·      장정만 60만이 넘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아무런 계획이나 대책도 없이 애굽을 떠나 광야길로 이끌어 내었으나, 하나님 말씀만 믿고 지시대로 따른 것이 믿음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시고, 반석에서 나온 생수를 마시게 하시고, 의복이 헤어지지 않게 하시고, 발이 부릍지 않게 하셨다 ( 8:2-4).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공급하신다 ( 5:25-32).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 ( 13:21-22, 5:33).

·      모세의 믿음의 인내는 그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보는 듯이 함에서 비롯되었다 (:27).

n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특별한 관계를 허락하셨고, 사람이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다 ( 33:9-11, 12:6-8).
n  또한 모세는 하나님을 이름으로 알고, 하나님의 영광의 일면을 보았다 ( 33:17-23).
n  신약시대에 사는 성도는 모두 특별한 은총을 받아 살고 있다. 예수님의 오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셨고 ( 1:14,18, 1:3), 예수님을 보고 듣고 만진 자들이 전하여준 말씀을 받았다 (요일 1:1-3, 2:3). 우리가 직접 예수님을 보지 않았으나, 보지 않고 믿으므로 귀하다 ( 20:29).
n  믿음의 인내는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예수님께 고정하고 만을 바라보고 나가는데 있다 ( 12:2).
n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은 육체의 감각으로나 사람의 마음으로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고전 2:9). 육신의 감각으로는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 6:9-10, 13:14-15). 하나님의 깊은 것을 보게되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음이다 (고전 2:10-11). 그런 (, 천국의 비밀(복음) 깨닫는 ) 복이 있다 ( 13:11,16). 영의 눈이 열리어 영의 일을 분별하도록 (고전 2:13, 8:5) 간구하여야 것이다.

ㄹ.  유월절을 지킨 믿음 (:28)

·      하나님은 유월절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 가를 모세에게 명하셨다 ( 12:1-20). 특히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어린양의 피가 표적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이 생명을 보존할 것을 말씀하셨다 ( 12:5-7,13).
n  모세는 유월절에 관해 백성들에게 명하면서, 이미 피뿌림이 생명을 보존하게 것임을 믿음으로 말했고 ( 12:23), 같은 밤에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것과 ( 12:27), 이스라엘은 종살이에서 풀려나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의 땅에 이를 까지 믿음으로 내다 보았다 ( 12:25). 아직 받지 못한 것을 받은 듯이 순종하여 따르는 것이 믿음이다.
n  생명을 구하는 방법 (문설주와 인방에 피를 뿌리는 ) 사람의 이성과 생각에는 납득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따라가는 것이 믿음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에돔 땅을 둘러 행하는 중에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을 , 하나님의 명하신대로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쳐다본 자는 살았다 ( 21:4-9). 마찬가지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정하신 방법이다 (고전 1:18-24).
·      유월절의 어린양은 신약시대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다 ( 1:29, 고전 5:7, 벧전 1:19).

ㅁ.  홍해를 건너던 불신자들 (:29)

·      애굽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홍해가 갈라진 것을 보았고, 바닷물의 사이에 육지로 뛰어 내려갔다. 행위는 똑같았으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께서 바다 가운데로 안전히 행하게 주시겠다는 약속이 있었고 ( 14:16), 애굽인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죽이기로 작정하셨었다 ( 14:17-18). 하나님은 애굽인들을 대적하셨고 ( 14:23-25), 그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셨다 ( 14:27, 15:21).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지 않은 행동은 믿음의 행위가 아니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29). 믿음은 주문이나 마술 방망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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