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믿음의 성격 (:1-3)
ㄱ.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다 (:1).
·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보이지 않으나 (롬 1:20)
믿음으로 보게 된다.
- 그 만드신 만물에 그것이 드러나 있다 (롬 1:20,
시 19:1-6). 믿음이 있어야 창조물은 보이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임을 알 수 있다 (:3)
- 보이시지 않으신 아버지를 독생자 예수님이 드러내셨다 (요 1:14,18;
14:7,9-10, 골 1:15, 2:9).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한다.
- 믿음이 없는 자는 창조물과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썩어질 것들에 형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롬 1:25)
· 우리의 소망하는 바가 보이지 않으나 (롬 8:24), 믿음은 소망하나 아직 얻지 못한 것의 실상이 된다 (:1). 보이지 않으나 바라는 것을 믿고 기다리는 자에게는 반드시 인내가 있어야 한다 (롬 8:25,
갈 5:5)
-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이시다 (시 38:15, 39:7, 42:5,11, 43:5, 71:5, 78:7, 130:7, 131:3, 146:5).
-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소망이 있다 (시 119:43,81, 130:5)
ㄴ.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의 근거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믿음이 비롯되는 것이다 (롬 10:17).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언약/약속이고, 그 약속을 우리는 바라고 믿는 것이고, 믿는 자는 그것을 얻기까지 소망으로 인내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약속 --> 소망 <-->--> 믿음 --> 인내
약속의 예: 의, 구원, 부활, 영생, 천국, 영낙
하나님의 말씀/약속이 우리에게 유익되게 되는 것은, 우리가 그 말씀을 믿음과 화합할 때 그러하다 (히 4:2). 이 믿음은 물론 하나님의 선물로 받는 것이고 (엡 2:8),
자기 스스로 자기 마음에서 만들어 내는 신념이 아니다 (잠 28:26).
ㄷ. 믿음으로만, 하나님께 증거를 얻을 수 있다 (:2,39).
· 2절에 ‘증거’라고 번역된 말은 μαρτυρεω (martureo, 말투레오, bear witness to/testify)이고 1절에 ‘증거’라 번역된 말은 ελεγχος (elegchos, 엘렝코스, proof/evidence, 증거/증명) 이다.
·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 대하여서 μαρτυρεω (증거) 하셨고 (요 5:32), 또한 다윗에 대하여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μαρτυρεω (증거)하셨다 (행 13:22).
· 믿음의 사람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μαρτυρεω (증거)를 얻는 것이다 (:2). 그리고 더불어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μαρτυς (martus, 말투스, witness/(martyr), 증인)이 되는 것이다.
2.
아벨의 믿음 (:4)
ㄱ.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 (:4).
· 창 4:4-5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즉 아벨의 제물이 열납된 것은, 먼저 아벨이 하나님께 열납되었기 때문이었다.
·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아벨이 열납된
것은 “믿음으로”라고 가르친다 (:4).
·
여기서 ‘열납되었다’는 말은 ‘had respect unto’ 즉 ‘존귀히 여기셨다’는 말이다. 여기서 ‘respect’ 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어는 שָׁרָה (Sharah/shawraw,
쇼로) 인데 ‘자유케 하다’, 또는 ‘내려다 보며 어쩔줄 몰라하다’
등의 뜻이 있다고 한다. 습 3:17의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란 말씀을 연상시키는 말씀이다.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그 제물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시 50:8-13).
아벨이 드린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은 모세의 율법에 제정된 제물, 특히 속죄제물인데 (레 27:26,
출 29:13-14), 가인이 드린 ‘땅의 소산’도 소제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제사였다 (레 2:1-16). 중요한 것은 소제물에는 누룩이 (즉, 죄가) 섞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레 2:11).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시 50:23),
제사드리는 자가 그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다 (롬 12:1, 시 50:16-21).
· 가인의 제사가 열납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먼저 가인을 열납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다 (창 4:5). 그는 선을 행치 않았고, 죄의 종된 생활을 하였다 (창 4:6-7).
ㄴ. 저가 죽었으나 믿음으로써 오히려 증거한다 (:4, 참: 마 23:35, 눅 11:51, 히 12:24). 하나님은 죽은 아벨의 피의 호소를 들으셨다 하셨고 (창 4:10),
그의 죽음을 신원하여 주사 가인에게 공의로운 심판을 하셨다 (창 4:11-15).
의인에게는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다 (잠 14:32).
3.
에녹의 믿음 (:5-6, 창 5:21-24, 유 1:14-16)
ㄱ.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다 (:5). 믿음으로 하지 않고, 육신의 생각과 정욕대로 사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롬 8:5-8)
· 에녹의 믿음의 내용 (:6)
- 하나님이 계신 것
-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신다 – 아들 예수님을 통한 구원과 영생, “모든 좋은 것” (롬 8:32)
- 하나님은 또한 심판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경건하지 않은 일, 강퍅한 말, 원망, 불평, 정욕, 입으로 자랑하는 것 등을 정죄하신다 (유 1:14-16)
· 므두셀라의 교훈
- 에녹은 65세에 아들을 낳아 므두셀라라고 이름하였다. 그 이름의 뜻은 “그가 죽으면, 그것이 보내지리라” (참: 히 9:27)라는 것이다.
- 창 5장의 계보를 보면, 므두셀라가 출생할 때에 아담은 687세이었고, 아담,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이 모두 아직 생존하고 있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며 인생의 무상함과 비애와 심판 등을 혹 생각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지만 (전 7:2-4), 아직 사람에게 죽음이 별로 다다르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과 심판에 관한 하나님의 경고를 에녹은 믿은 것이었다.
- 그리고, 실제로 므두셀라가 죽은 후, 노아의 홍수가 있었다.
므두셀라 187세 – 라멕 출생 (창 5:25)
므두셀라 369 세 – 라멕182 세 – 노아 출생 (창 5:28-29)
므두셀라 969 세 – 노아 600 세 – 홍수 심판 (창 7:6)
므두셀라의 나이는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나타낸다 할 수 있겠다 (벧후 3:3-13)
· 심판을 바라보는 준비 (벧후 3:3-13)
- 대개의 사람들은 심판을 망각하거나 불신하면서 살고 있다 (마 24:37-39, 벧후 3:3-5)
- 혹 심판에 대해 알아도, 그것을 두려워하며 지체되기를 바라지는 않는가? (마 24:29-30)
- 믿음의 사람이라면, 그 날을 사모하며 준비하며 속히 오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벧후 3:12, 계 6:9-11, 18:1-20, 22:20)
ㄴ.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워졌다.
· 동행 = 의합 (암 3:3) – 신앙인의 생활
하나님의 뜻에 동의하여 사는 생활 –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10) (“Your
wish is my command.”) – 하나님을 절대 군주로 모신 생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생활 – 내가 가는 데로 하나님이 따라 오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내가 따라 가는 것이다 (출 13:21-22)
·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다 (“translated”)
- 에녹이나 엘리야 같이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 단지, 하늘나라에 갈 때에 썩은 몸을 입고는 갈 수가 없으므로 (고전 15:50),
이 땅에서 갖고 살던 육신의 장막은 벗어버리고 하나님께로 옮기워 갔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화액 전에 먼저 취하여 가시기도 한다 (사 57:1-2)
· 하나님과 300년을 동행하였다 (창 5:22)
- 300년이란 기간은 에녹의 믿음생활의 신실함(faithfulness/steadfastness)을 나타낸다.
o
성령의 열매: 오래 참음 < 자비 < 양선 < 충성 (계속되는 양선) (갈 5:22-23)
- 우리의 믿음 생활은 꾸준히 계속되어야 한다; 주님 안에,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여야 한다 (시 119:5, 골 1:23, 2:6, 살후 3:4, 딤후 3:14, 요 15:4-10, 요일 2:28, 요이 1:9, 행 13:43),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시 100:5, 119:90).
- 전심으로 계속 믿음을 지키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고(대하 6:14, 왕상 8:23),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며 (사 26:3), 힘이 되어 주신다 (대하 27:6).
4.
노아의 믿음 (:7, 창 5:28-9:29, 마 24:37-39, 눅 17:26-27,
벧전 3:20, 벧후 2:5)
ㄱ. 노아는 성경에서 제일 먼저 ‘의인’이라는 칭호로 불리운 사람이었고 (창 6:9),
다니엘과 욥으로 더불어 성경에서 3대 의인에 꼽히는 사람이다 (겔 14:14,20).
그는 또한 의를 전파하는 자 (preacher of righteousness)이었다 (벧후 2:5).
· 그가 의인이었던 것은,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것의 결과이었다 (창 6:8).
· 그리고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완전하게 행하였다 (창 6:9).
그가 완전하게 행한 내용은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한” 일인데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았다고 했다 (:7).
ㄴ.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경외함
· 노아의 때에 세상은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가득한 세상이었고 (창 6:11-12), 육신의 쾌락과 정욕을 좇아 살고 있었다 (창 6:1-2). 세상은 죄악이 관영하였고, 사람의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은 항상 악할 뿐이었다 (창 6:5).
· 그런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은 이미 여러 차례 경고하셨던 것 같다. 이미 에녹을 통해서 심판에 대하여 경고하셨었고 (유 1:14-16),
아마도 므두셀라도 그 이름의 뜻을 기억하며 그 생애 자체가 사람들에게 대한 경고이었을 것이고, 노아의 때에도 홍수 120년 전에 경고하시었고 (창 6:3), 방주가 예비되는 동안 오래 참고 기다리셨다 (벧전 3:20).
· 노아의 믿음은 요원해 보이는 홍수 심판에 대한 경고를 믿음이고, 또한 그에 따라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방주를 예비한 것이다 (창 6:22).
· 아마도 방주를 만들면서 사람들의 조롱과 비방을 들었을 것이나 노아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그 아들들 셈, 함, 야벳은 노아가 500세 된 후에 나은 아들이었고 (창 5:32), 방주를 만들라는 명령은 그 세 아들이 이미 결혼한 후이었는데 (창 6:13-21),
노아 600세 때에 홍수가 나기까지 아마도 수십년을 조롱 속에서 방주를 만들었을 것이다.
·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경외하면서, 또한 노아는 하나님의 사랑과 권념하심을 잊지 않았다. 노아 600세 2월 10일에 방주에 들어가, 600세 2월 17일에 홍수가 시작되었고 (창 7:9-11), 601세 2월 27일에 땅이 말라서 방주에서 나오기까지 1년이 넘는 기간을 방주에서 지나면서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믿는 믿음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바람을 불게 하신 것을 보며, 땅을 말리시려는 하나님의 권념하심을 보았고 (창 8:1),
방주에서 나와서는 먼저 정결한 짐승으로 감사의 제물을 드렸다 (창 8:19-20).
· 믿음이 있었기에, 엄청난 홍수의 심판을 피부로 경험하고 난 후에도, 그저 두려움과 공포로 무력해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무지개로 약속하신 것을 믿고 그의 복주심을 믿을 수 있었을 것이다 (창 9:1-17). 그래서 노아는 “의의 후사”가 되었다 (:7)
ㄷ. 노아의 믿음의 행위는 또한 세상을 정죄하였다 (:7).
·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경고에 부응하여, 그 명대로 심판을 예비하는 노아의 믿음의 행위는, 순종하지 아니하는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 핑계할 것 없이 자기 죄악에 합당한 보응을 받게 하는 것이 되었다.
· 또한 노아와 그 가족은 살아 남아서, 정죄받은 자들의 심판받았음을 후세에 전하게 되었다.
· 불신자의 정죄는, 그에게 빛이 비추어졌을 때 자기의 악을 드러내는 빛으로 나와서 회개하고 구원받지 않고, 오히려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여 어두움 가운데, 즉 죄 가운데 거하는 것이다 (요 3:19-21).
· 복음을 전하는 자는 그리스도의 향기인데, 믿고 구원받는 자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게 하는 냄새가 되나, 다른 이들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게 하는 냄새가 된다 (고후 2:15-16).
·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자들는, 그 말씀이 그들을 마지막 날에 심판할 것이다 (요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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