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브라함의 믿음 (:8-19)
ㄱ. 부르심에 순종함 (:8, 창 12:1-5)
· 본래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그 가족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갈 계획이었으나, 도중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다가 205세에 죽었다 (창 11:31-32). 데라는 그 곳에서 다른 신들을 섬겼다 (수 24:2).
· 아브라함은 75세에 (창 12:4), 즉 그 아비 데라가 145세로 아직 하란에 살아 있을 때에 (창 11:26), 하나님의 명을 따라 그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시하실 땅으로 갔다 (창 12:1). 노인이 되어 자기 생활의 기반을 모두 이사하는 것이 (창 12:5) 결코 쉽지 않았겠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 떠나되,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 믿음의 사람은 한 걸음을 내디디건, 안 내디디건,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그 발의 등과 그 길의 빛 삼아 움직이는 것이다 (시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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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가야하는 것을 몰랐던 것인지, 또는 가나안으로 갈 것은 알았으나 그 곳이 어떤 곳인지를 몰랐던 지 간에, 중요한 것은 미지의 땅으로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고 나아갔다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인도하실 때, 우리 앞에 어떤 길로 인도하실 지 알지 못하지만,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의롭게 하셨고 또한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이다 (롬 8:30). 내일 일을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공급하시니, 우리는 그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된다 (마 6:31-34).
ㄴ. 본향과 기업에 관한 믿음 (:9-10, 13-16)
· 이 땅에 살면서, “외방인”, “외국인”, “나그네”로 살았다 (: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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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방인, 외국인이란 말은 ξενος (xenos, 제노스, alien/stranger, 외계인)이고, 나그네란 말은 παρεπιδημος (parepidemos, 파레피데모스, sojourner,
임시 주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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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스스로를 나그네라 하였고 (창 23:4), 야곱이 그리하였고 (창 47:9), 다윗도 자신을 ‘객’, ‘거류자’라 하였다 (시 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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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호칭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적당한 것이다 (벧전 1:1, 2:11)
·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바라본 기업에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었다 (창 12:7, 13:14-17,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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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은 그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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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그 자손들도 사백년을 이방에서 객이 되어 살다가 그 후에야 약속하신 기업의 땅으로 돌아오리라고 하셨다 (창 1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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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차지하지 못했으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또 자손들에게도 전했다.
· 또 하나는, 하늘의 본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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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향이란 말은 πατρις (patris, 파트리스, fatherland, 아버지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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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생각한 아버지의 땅은 육신의 아버지 데라가 있는 하란이 아니었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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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공급자이신 영적 아버지 하나님(히 12:9, 전 12:7)께서 계신 천성, 하늘나라를 바라본 것이다. 예수님이 증거하시기를, 아브라함은 예수님의 때를 보았다고 하셨다 (요 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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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성은 (ㄱ) 터가 있고, (ㄴ) 하나님께서 경영하시고/설계하시고 (architect) 지으시는 (builder) 영원한 성이다 (:10).
예수님이 모퉁이돌이 되시고, 선지자와 사도의 터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백성의 성이다 (엡 2:20, 참: 계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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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을 바라본다 함은, 또한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뜻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는 …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하셨다 (창 15:1). 또한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의 거처가 되신다 (신 33:27, 시 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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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나님 아버지(의 천성)을 소망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저희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셨다 (:16, 출 3:6, 마 22:31-32).
ㄷ. 죽은 자와 방불하나 많은 자손을 얻음 (:11-12)
· 사실 아브라함이나 사라에게 여러가지 불신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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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자기의 씨가 아직 없음을 보고 자기 집에서 길리운 자, 다메섹 엘리에셀이 자기의 후사가 되겠다고 했다 (창 15:2-3).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은,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셨다 (창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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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에서 10년을 산 뒤, 더 기다리지 못하고 사라의 권고대로 그 여종을 통하여 아들을 얻었다 (창 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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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나님은 사라를 통하여 아들을 주시겠다 하셨고 (창 17:16), 그 말씀을 들으면서 아브라함도 웃고 (창 17:17), 사라도 웃었다 (창 18: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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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람의 이런 불신 와중에도, 하나님은 신실하셨다. 약속대로 이삭을 주셨다 (창 21:1-2).
· 불신했던 적도 있었으나, 히브리서 기자가 기록한 사라와 그 남편 아브라함의 믿음은 약속하신 하나님이 미쁘시다는 것을 믿은 것이다 (:11, 창 15:6, 롬 4:18-22).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을 들을 때에 그것을 믿고 따름이 믿음이다.
· 그 결과 약속의 자녀 이삭이 낳고, 또한 모든 믿는 자들이 약속의 자녀로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었다 (갈 3:7, 4:28). 그 수가 많아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게 되었다 (창 13:16, 15:5, 22:17, 히 11:12, 계 7:9).
·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롬 4:17).
ㄹ. 이삭을 도로 받음 (:17-19)
· 하나님은 이삭을 바치는 것으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다 (:17, 창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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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로 악에 빠지게 시험하시지 않는다 (약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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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시는 하나님은 (왕상 8:39, 요 2:24-25), 때로는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드러내시려고 사람을 시험하시기도 하신다 (대하 32:31 – 히스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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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언약을 이삭을 통해 이루시겠다고 하셨는데 (창 17:19, 21:12), 바로 그 언약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다 (창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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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시하신 곳 모리아산까지는 3일길이었다 (창 22:4). 온갖 번민으로 가득차기 쉬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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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도착하자, 그 아들 이삭이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라고 물었다 (창 22:7). 다시 아브라함의 마음을 찌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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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브라함이 자기 손으로 아들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칼을 들어 아들을 잡으려 할 때까지, 하나님은 지켜 보시었다 (창 22:9-10).
·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신앙은 세상의 상식으로는 모순이 있는 것을 극복하는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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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는 세상사람들에게는 미련해 보이고 거리끼는 것이지만 (고전 1:18,23), 구원을 얻는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고전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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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그 무덤의 돌을 굴리면 냄새가 나겠다고 합리적으로 말하는 마르다에게, 예수님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하셨다 (요 11:39-40).
· 아브라함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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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바로 그 다음 날 아침 일찌기 (Early the next morning) 일어나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였다 (창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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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결단성은 그의 부활신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9).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다시 살리셔서라도 그와 세우신 언약을 이루실 것을 믿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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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그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을 증명한 것이었다 (창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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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나님은 미리 준비하신 수양으로 대신 번제를 드리게 하셨고 (창 22:13-14),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다시 확인하셨다 (창 22: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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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삭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형이었다.
2.
이삭과 야곱의 축복에 나타난 믿음 (:20-21).
ㄱ. 이삭의 축복 (창 27장)
· 이삭은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진 때에, 그 아들 야곱과 에서에게 장차 일어날 일에 관해 축복하였다. 야곱에게는 열국의 주가 되도록 축복하였고 (창 27:27-29), 에서는 그 아우를 섬길 것을 말하였다 (창 27:39-40).
· 비록 처음에는 야곱에게 속아 축복하였지만, 에서가 와서 야곱에게 속은 줄을 깨달은 후에도 에서의 장래를 진실되게 말한 것으로 보아, 하나님께서 이미 예정하신 뜻(창 25:23, 롬 9:10-13)대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게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 그리고 아직 아무런 기업도 받지 못해 외방인으로 살면서, 야곱의 자손이 땅의 주권자가 될 것을 믿음으로 알고 축복하였다. 물론, 이 믿음은 (아브라함에게) 미리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이었다.
· 또한 이삭의 축복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한 것이었으므로 그대로 이루어졌다 (요일 5:14).
ㄴ. 야곱의 축복
· 창 48장에서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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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긎맞겨 얹히움을 받고, 차자인 에브라임에게 더 큰 축복이 갔다. 후에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에브라임이 창대하여 북왕국 10지파의 대명사처럼 된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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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요셉의 두 아들을 자기의 아들들과 똑같이 간주함으로 요셉에게 두 분깃, 즉 장자의 명분이 돌아간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출애굽하여 광야생활 중에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는 다른 지파와 같이 각각 한 군대를 이루었다 (민수기). 또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 돌아갔다 (대상 5:1)
· 창 49장에서는 그의 열 두 아들들에게 각자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다.그들에게 “후일에 당할 일”을 이른 것이었다 (창 49:1).
· 이와 같이 장래 일에 관하여 축복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으로였다.
3.
요셉의 믿음의 임종 (:22)
ㄱ. 요셉은 임종하면서도 믿음을 지키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그 백성을 인도하실 것을 이야기 하였다 (창 50:24).
·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으로 항상 기업의 땅을 생각하게 하려고, 하나님의 권고하심으로 애굽을 떠날 때에 자기의 유골을 가지고 가도록 맹세시켰다 (창 50:25).
· 실제로 그의 유골은 창 50:26에 입관되었고, 출애굽시에 모세가 가지고 나왔으며 (출 13:19), 수 24:32에 장사되었다.
ㄴ.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창 50:24)
·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됨에는 자기의 죽음이 문제되지 않음을 말했다.
· 자기 중심이 아니고,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