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세보다 탁월하신 예수님 (3:1-6)
(1)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3:1)
· 여기서 “사도” (αποστολος, apostolos, Apostle/Ambassador) 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란 뜻을 가졌는데,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부터 보내심을 받았다 (요 17:3). 그리고 또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사도로 보내셨다 (요 17:18, 20:21).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하나님의 명령대로 (요 12:49),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대로 (요 8:29) 하나님의 말씀을 하셨고 하나님의 교훈을 전하셨다 (요 3:34, 7:16, 14:24, 17:8).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곧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눅 9:48, 요 13:20), 예수님을 저버리는 것은 곧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다 (눅 10:16). 하나님의 보내신 자 예수님의 말씀을 알고 믿는 것이 곧 우리의 “믿는 도리”이며, 우리에게 영생이 되는 것이다 (요 5:24, 17:3).
· 또한,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우리 사람들의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어서 사람을 도우시는 분이시다.
· 예수님과 모세를 비교할 때, 모세도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 (출 3:13-15, 4:28)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였으나, 모세는 제사장 직은 없었고 그의 형 아론이 제사장 직을 수행하였다 (출 28:1).
·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 예수님은 오로지 하나님의 명령대로 (요 12:49), 하나님의 말씀 만을 전하셨다(요 3:34, 7:16, 14:24, 17:8). 모세도 하나님의 말씀을 충성스럽게 전하였지만, 맛사와 므리바에서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는 일에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다 (민 20:2-12). 이 일로 인해 모세와 아론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민 20:12,24). 이 일은 두고 두고 모세에게 후회스러운 일이 되었다 (민 27:12-14, 신 32:50-52)
(2)
집을 지으신 자가 집보다 더욱 영광을 받아야 한다 (3:2-6)
· 여기서 말하는 집, 곧 하나님의 집은 교회를 일컫는다 (딤전 3:15, 고전 3:9).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는 자” (3:6), 즉 믿음을 지키고 믿음의 결국에 올 구원의 영광을 굳게 잡는 자가 그 집의 구성원이다 (요 14:23). 베드로는 우리를 이 신령한 집을 만들어 가는 ‘산 돌’이라 했고 (벧전 2:5), 또한 바울은 우리를 그 집의 그릇에 비유하였다 (딤후 2:20-21).
·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이다 (3:3-4, 시 87:5).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3:4, 창 1:1, 시 33:6), 또한 그 교회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피로 값주고 사셔서 (행 20:28),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신 것이다 (고후 5:17).
· 모세는 이 집에서 비범한 사환으로 충성하였다 (3:2,
민 12:7, 신 34:10-12). 모세처럼, 하나님의 동역자/사역자로 일하는 일군들도 이 하나님의 집을 세워가는 일을 하고 있다 (고전 3:10). 실로, 모든 믿는 사람들은 각자 받은 은사대로 하나님의 집을 짓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엡 4:12, 마 7:24-27). 모세나 성도들은 집을 짓되, 스스로가 그 집의 일원이 되게 짓는 것이고, 예수님은 그 집의 주인, 창조주로서 지으시는 것이다.
·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이시다 (3:6).
예수님 앞에 만물이 무릎을 꿇고 (빌 2:9-10, 엡 1:21-22), 예수님은 모든 것의 으뜸이시며 (골 1:18), 교회의 머리이시다 (엡 1:22, 골 1:18). 하나님의 집에서 후사/기업이 있으신 아들이시다 (히 1:2).
2.
하나님의 안식을 약속하는 복음의 말씀 (3:7-4:13)
(1)
하나님의 안식
·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는 일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4:3-4, 창 2:1-3). 하나님의 안식은 창조의 일이 마친 때에 이미 완성된 안식으로 계속되어 왔다 (4:3). 유대의 랍비들은 말하기를 창조의 처음 엿새 동안은 저녁과 아침의 기록이 있으나, 일곱째 날에는 저녁이 없이 계속되는 영원함이 있다고 가르쳤다; 즉 하나님의 안식은 영원한 것이라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안식하신다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안 하시고 가만 계시다는 말이 아니다 (요 5:17). 오히려, 그 창조하신 만물을 보존하시고 (히 1:3), 그 택하신 백성을 구속하시는 사역을 계속해 오시고 있으며, 그 일을 열심으로 이루시고 계시다 (사 9:6-7). 하나님의 안식은 그의 백성들과 완성된 창조물을 기뻐하시며 통치하시며 영광받으시는 하늘나라이다.
·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안식을 예표하는 것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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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을 기념하여 거룩히 지킬 것을 명하셨다 (출 20:8-11, 31:12-17). 안식일에는 육체의 일을 쉬고, 그 날을 거룩히 지키어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명하셨다 (민 28:9-10, 대상 23:31, 대하 2:4, 31:3, 느 10:33, 겔 45:17). 안식의 촛점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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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신약시대에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주님의 날, 주일로 지켜왔다 (계 1:10, 고전 16:2). 주일의 촛점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다 (눅 13:15, 마 12: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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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의 예표였다 (3:8-11, 4:5, 시 9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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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나안에 들어간 것 자체가 하나님의 안식에 다다른 것이 아니었으므로, 이미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다윗 시대에 와서도 안식에 들어갈 날에 대하여 이야기한 것이었다 (4:7, 참: 히 11:16,40). 구약의 것들은 장래 일의 예표요 그림자일 뿐이었다 (4:8-9, 골 2:16-17).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들어간 가나안이 참 안식이 아니고 (4:8), 장차 올 안식의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다 (4:9).
(2)
복음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을 전하는 말씀이다 (4:1-2).
· 예수님께 나아가는 자에게는 ‘쉼’ 즉 안식이 있음을 약속하셨다 (마 11:28-30).
· 이 쉼의 첫째 요소는, 자기 자신의 ‘수고와 무거움 짐’을 내려 놓는 것이다 (마 11:28). 자기 자신의 일에서 쉬는 것이다 (히 4:10). 이것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은 주 안에서 죽어 세상을 떠나는 때이지만 (계 14:13), 이 세상에 살면서 성화하는 과정이 점차 자기 육체의 일을 내려 놓는 것이다 (갈 2:20, 빌 1:21, 롬 6:11).
· 이 쉼의 둘째 요소는, 예수님의 ‘멍에’, 예수님의 ‘짐’을 메우고, 예수님께 배우는 것이다 (마 11:29). 즉, 예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에 대한 복음은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에게도 전해졌고, 지금 우리에게도 전해지고 있다 (4:2).
(3)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어난 일들은 우리에게 경계가 된다 (3:8-11, 15-19, 고전 10:5-11).
· 광야 생활 40년 동안 내내 하나님을 시험하고 증험하였다 (4:9).
· 그 중에서도 특별히 ‘므리바’ (quarreling, 다툼) 또는 ‘맛사’ (testing, 시험함)에서 물로 인해 하나님을 불신하며 그 마음을 강퍅케 하였다 (3:8, 시 95:8, 출 17:1-7, 민 20:2-13). 이 일로 모세와 아론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 또한 가데스바네아에서 정탐군들의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나님을 불신하고 멸시하여 원망하다가(민 13:1-14:45, 신 1:19-33) 가나안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민 14:22-23, 신 1:35, 시 95:11, 히 3:11, 4:5).
·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3:10).
· 히브리서 기자가 증거하는대로,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창 12:7)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그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3:19,
4:2, 롬 1:16), 믿지 않음으로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3:18, 4:6).
· 그러므로, 우리가 경계를 받아서
o
믿지 아니하는 악심(요 16:9, 롬 14:23)을 품고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3:12, 빌 2:12-13). 믿는 자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이루시지만, 믿는 자는 하나님께 대하여 혹이라도 불신과 불순종을 나타낼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믿음과 순종의 길을 가야 한다 (4:1, 롬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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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차 권면하여 (살전 5:14)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해야 한다 (3:13).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본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4:11).
o
첫 믿음을 끝까지 견고히 잡아야 한다 (3:14). 복음은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는데” (롬 1:17), 믿음으로 복음을 받게 되고, 일단 믿은 후에는, 또한 믿음을 지켜 계속 믿음과 순종의 생활을 하여야 한다 – 이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하는 것이라 하겠다.
o
복음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할 때는 바로 오늘이다 (3:15, 4:7, 고후 6:2, 요 12:35).
(4)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 (4:12-13) –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계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이유 (12절은 ‘For (γαρ, gar, 이는)’이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한국말 성경에는 이 말이 빠져 있다. 즉 12-13절의 말씀이 그 앞에 나온 명령과 권면의 이유라는 말이다).
· 하나님의 말씀은 곧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서 ‘검’에 비유되었다 (계 19:15, 엡 6:17).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운동력이 있다 (4:12).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문자나 사상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헛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그의 목적을 달성한다 (사 55:11).
·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과 육체의 깊은 곳까지 찔러 들어가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어 (4:12),
우리에게 있는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다 (4:13).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책망하시고 판단하시어 (요 16:8), 우리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를 경배하게 하는 효력이 있다 (고전 14:24-25).
·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통해 전해진 말씀을 듣고, 믿는 자에게는 구원이 있다 (롬 10:8-10,13-15). 그러나, 이 말씀은 구원 얻는 자들에게는 생명으로 나타나고, 망하는 자들에게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고후 2:15-16).
·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믿음으로 받고 순종하여 생명에 이르는 구원을 얻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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