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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January 25, 2019

요한복음 3장 1~10절 – 니고데모의 방문 (1) – 중생


1.     니고데모 (:1-2)

ㄱ.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의 관원이었다 (:1). 율법에 대하여는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10).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의 이름은 헬라식 이름 (‘백성의 승리라는 )이었다.
·      하나님의 복음의 도를 모르고, 표적을 찾는 유대인과 (:2 – 니고데모는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 ) 세상의 지혜를 찾는 헬라인을 (:4, 9 – 니고데모는 자기 지혜대로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었음) 더불어 상징하는 사람이다.

ㄴ.  구약에서도 성령이 언급되었고 ( 51:11, 63:10-11), 성령의 역사를 통해 사람이 새롭게 되는 것에 관해 예언된 있었다 ( 32:15, 59:21, 11:19, 36:26, 37:14, 39:29, 12:10, 2:28-32). 그러나, 니고데모는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한 하다.

ㄷ.  단지 그는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랍비/선생님이라 생각했다.

·      예수님이 행하신 같은 표적은 사람의 힘으로 있는 것이 아닌 것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만이 선생이라는 것을 증거한 것이다.
·      하나님께서 표적을 사용하시는 이유는
n  표적으로 전해지는 말씀을 확실하게 있다 ( 16:20)
n  또한 표적과 함께 말씀을 전하는 자의 직분의 표가 있다 (고후 12:12).
·      그러나 거짓 선지자가 이적과 기사를 행할 수도 있다 ( 13:1, 24:11, 살후 2:9). 이런 것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 여부를 시험하실 있다 ( 13:3).
·      그러므로, 2 마지막에서 살펴 바와 같이, 표적에 의지한 믿음 미미한 것이다.

ㄹ.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 왔다 (:2).
·      혹은 말하기를 랍비들은 밤에 공부하는 것을 장려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띠는 것을 두려워 같다.

ㅁ.  이런 미미한 시작이 있었으나, 나중에 니고데모는 공회에서 예수님을 변호하는 발언을 했고 ( 7:50-51),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 몰약과 침향 섞은 근쯤을 가져왔다 ( 19:39).

2.     성령으로 거듭나야 (:3-8) – 그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믿음의 가장 중요한 , 거듭난 사람이 되는 것을 말씀하셨다

ㄱ.  거듭나는 것의 의미

·      거듭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원어 ἄνωθεν (아노쎈) 거듭이라는 뜻도 있고 위로 부터라는 뜻도 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로서 자들이므로 ( 1:13), 거듭나는 것은 위로 부터, 하늘로 부터 나는 것이라고 생각할 있겠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와 대화하실 때는 아람어/히브리어를 사용하셨을 것이고, 아람어로는 그냥 거듭이라는 뜻의 단어를 사용하신 하다. 왜냐하면, 4절에서 니고데모는 번째 모태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반문하였기 때문이다.

·      예수님은 거듭나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나는 임을 말씀하셨다 (:5)

n  많은 성경학자들이 세례를 통해  죄에서 부터 씻기움을 뜻한다고 한다. 이런 견해로 인해, 세례를 받지 못하면 구원이 없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세례의 중요성은 교회가 인정하는 바이지만 (2014 5 5 blog entry), 십자가 상의 강도가 구원받은 처럼 세례가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는 없다.
n  요한복음의 증거를 , 물은 성령 또는 정결하게 하는 성령의 역사를 가리킨다 ( 7:37-39).
n  본문 8절에서는, “물과 성령으로나는 사람을 그냥 성령으로 사람이라 하였는데, “ 성령 같은 의미를 가졌음을 있다.

·      거듭나는 것은 새사람으로 창조되는 것을 가르킨다 (고후 5:17).

n  6절에서 예수님은 육으로 것과 영으로 것을 분명히 구분하셨다.
n  육으로 자는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다 ( 2:3).
n  하나님께서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거듭나게 하셔서 소망 (생명의 소망) 있게 하셨다 (벧전 1:3). 이와 같이 영으로 거듭난 자는 생명을 갖고 사는 것이다.
n  거듭난 자에게는 성령의 역사가 하나님의 시작된다 (요일 3:9). 씨는 썩어질 씨가 아니고, 썩지 아니할 씨인데, 사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벧전 1:23).

ㄴ.  거듭나야 하는 이유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들어갈 있다 (:3,5).

·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 우리가 귀신의 세력에서 벗어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였다 ( 12:28, 11:20). 성령에게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으로의 삶이 가능한 것은 거듭난 이다. 하나님은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새로이 만드신 것이다 ( 2:10).

·      앞으로 임할 하나님의 나라, 천국 또한 우리에게는 예수님 재림 후에 들어갈 영원한 천국의 소망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려면 썩어질 혈과 육으로 것은 없고, 썩지 아니하는 것으로 자가 있다 (고전 15:50). 우리의 거듭남이 썩지 아니할 씨로 것이다 (벧전 1:23)

ㄷ.  거듭난 자의 모습 (:8)

·      거듭난 자의 모습은 바람이 임의로 불매 소리는 들을 있으나,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하셨다. (: ‘바람 성령 헬라어로 같은 프뉴마’ (πνεῦμα)이다.)

·      , 성령의 역사는 거듭난 자의 삶을 통해 있지만, 성령님께서 어떻게 그런 변화를 가져 오시는 지는 우리의 지각으로 있는 바가 아니다.

·      거듭난 자에게는 반드시 삶의 모습이 따라야 한다.

n  하나님이 목적을 위해 우리를 새롭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 2:10)
n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로 입고/빛의 갑옷을 입고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여야 한다 ( 13:11-14).
n  좋은 나무라면 반드시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한다 ( 7:17-18).
n  거듭난 자가 맺는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로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다 ( 5:22-23).

·      하나님은 우리가 삶의 모습을 나타내게 하도록, 우리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합당한 소원을 두고, 또한 행하게 하신다 ( 2:13). 어떻게 그렇게 하시는 지는 우리가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