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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August 25, 2016

히브리서 10장 19~39절 - 온전한 믿음



본문에서 38절은 1:17 3:11 더불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2:4 인용하는 신약의 구절 중의 하나이다. 인용된 구절에서 살리라라는 말은 미래 시제로 되어 있는데 (“will live”), 이유는 사는 것이 일시적으로 잠깐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계속 영구적으로 이어지는 삶임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3:11에서는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 율법을 지킴으로가 아니고, 믿음으로라는 점을 강조했다. 1:17에서는 2:4 인용하면서 더불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 이르게 하나니»라고 하여,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칭의해 주시는 the righteousness that God imputes to us) 받는 것은 믿음으로 되는 것이고, 더불어 의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믿음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제 여기 10:38절에서는 2:4 통해 의인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환난 가운데서도 소망을 가지고 살아나가야 것을 가르치고 있다.

1.     우리가 어떻게 믿음을 얻었나? (:19-22)

ㄱ.  믿음은 성소에 들어갈 담력이다 (:19, 4:16, 3:12). 성소는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크고 온전한 장막” ( 9:11) 하나님의 존전이라 있다. 믿음은 우리로 하늘나라에 다다르게 하는 것이다.

ㄴ.  믿음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얻었다 (:19).

ㄷ.  예수님이 자기의 몸을 찢기심으로 휘장가운데로 열어놓으신 길이시다 (:20, 27:51).

ㄹ.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맑은 물로씻기셨고 (:21-22),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셨다 ( 5:26). 맑은 물은 성령을 가리킨다 있겠다 ( 7:38-39, 36:25-27).

2.     믿음의 근거 (:23) – 근거는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미쁘신 데에 있다.

ㄱ.  하나님에게는 거짓이 없고 ( 6:17-18), 어제나 오늘이나 변치 않으시고 항상 동일하시다 ( 13:8, 1:17).

ㄴ.  하나님은 그의 약속에 대하여 맹세로 보증하셨고 ( 6:17), 또한 예수님과 ( 7:22) 성령님께서 (고후 1:22, 5:5, 1:13-14) 언약과 기업의 보증이 되셨다.

ㄷ.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드러내신 하나님의 ( 보내신 그리스도를 믿는 ( 6:29)) 아는 것이 믿음이다. Faith is “a firm and certain knowledge of God’s benevolence toward us, founded upon the truth of the freely given promise in Christ, both revealed to our minds and sealed upon our hearts through the Holy Spirit.” (Calvin). 하나님은 진실하시고 ( 1:2, 3:3-4), 진실하심과 더불어 인자하신데 (25:10, 89:14, 92:2, 98:3, 100:5, 108:4, 115:1, 117:2, 138:2 ),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우리를 살리려 아들을 화목제로 세상에 보내신 것에 나타났다 (요일 4:9-10). 우리는 이것이 진리라는 것을 말씀을 보고 알고, 그것을 믿는 것이다.

ㄹ.  믿음에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요일 1:9) 말씀의 순결함( 12:6, 18:30, 19:7-9, 119, 30:5) 근거한  확실함(confidence, certainty) 있고 (살전 1:5), 확실함은 우리에게 하나님께 나아갈 있는 담대함을 준다 ( 3:12, 4:16).
ㅁ.  믿음에는 구원에 대한 확실함(assurance) 있고 ( 8:38-39), “믿는 도리의 소망 (하늘나라에서 누릴 영생에 대한 소망을) 굳게 잡게 하는 것이다 ( 10:23). 이런 확신이 있을 ,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게 된다 ( 5:1).

3.     믿는 자는 뒤로 물러가지 않는다 (:26-31, 38-39)

ㄱ.  히브리서 기자는 6:4-6,8에서 언급하였던 배도하는 자들에 대해 여기서 다시 언급하고 있다.

ㄴ.  배도하는 자들도 잠시 진리를 아는 지식 접할 있고 (:26, 6:4), 말씀을 기쁨으로 받기도 한다 ( 13:20). 그러나 그들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날 ( 13:21), 또는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이 있을 ( 13:22), 넘어지고 결실하지 못한다. (: 딤후 3:6-7). 단지 죄로 인해 저주의 소산인 ( 3:17-18) 가시와 엉겅퀴를 뿐이다 ( 6:8).

ㄷ.  이런 자들의 죄는 (1)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2) 자기를 거룩하게 언약의 피를 부정하게 여기고, (3)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것으로 용서함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29). 진리를 짐짓/일부러 거부하는 죄이다 (:26, : 19:13).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 하셨다 ( 12:31, 3:29). (모세의 율법에도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다른 신을 좇는 사람은 증인의 증거로 죽이라 하였다 ( 17:2-6)).

ㄹ.  유형교회 안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듯이, 신자와 가짜가 같이 있다 ( 13:24-30,36-43). 마지막 날에 가라지처럼 지옥 (:27, 66:24) 던져질 가짜신자들 중에는,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한 자들도 있을 것이다 ( 7:21-23). 끝까지 믿음을 지키어 열매을 맺지 못한 자들이다 ( 7:15-20). 실제로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포함한 12 제자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고, 이스라엘 사방으로 복음을 전하게 파견하셨다 ( 10:1-8). 그러나 가룟 유다는 도적으로 ( 12:6), 재리의 유혹에 넘어가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멸망의 자식으로 드러났다 ( 17:12).

ㅁ.  이렇게 유형교회 안에 있다가 타락/배교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본래 교회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일 2:19).

ㅂ.  올바른 믿음을 가진 자는 이와 같이 아주 타락하는 법이 없다 ( 22:32, 6:39-40, 10:28-29, 17:2,6,11-12, 8:33-39, 11:29, 1:3-14, 1:6, 살전 5:23, 살후 3:3, 벧전 1:4-5, 요일 3:9). 그러나 배교하는 자들을 거울과 경계로 삼아 (고전 10:10) 우리도 넘어질 조심하되 (고전 10:11), 하나님께서 우리를 넘어지지 않게 지키실 것도 신뢰할 것이다 (고전 10:12).  마찬가지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되 ( 2:12), 그것을 하나님께서 이루도록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 2:13).

ㅅ.  성도들도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를 짓기도 한다 (요일 5:16-17). 그러나 그럴 때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어 하나님께 죄를 자복하고 용서함을 구하여야 한다 (요일 1:8-9).

4.     믿는 자는 인내한다 (:32-39)

ㄱ.  히브리서 기자는 먼저 수신자들이 과거의 고난 중에 인내했던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32-34)
·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었다 (: 바울 고전 4:9-13 – 그는 동족( 13:45, 14:2,19, 17:13) 이방인에게 모두 핍박을 받았다 (고후 11:26)).
·       같은 고난을 받는 사람들과 사귀었다.
·       (복음을 위해) 갇힌 자를 동정하였다 (: 13:3) (: 에바브로디도 2:25,30).
·       산업/재산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하였다.

ㄴ.  성도가 인내해야 하는 이유

·       우리에게는 대한 소망이 있다 (:35)
o   상은 낫고 영구한 산업이고(:34),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받은 약속이고(:36), “영혼의 구원” (:39)이다. (: 8:18 – ‘장래의 영광’, 딤후 4:8- ‘의의 면류관’, 벧전 1:4 –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
o   상은 세상에서 우리가 가질 있는 어떤 부귀영화보다 좋은 것이다. 이것이 모세의 신앙이었다 ( 11:24-26)

·       심판주 예수님께서 잠시 잠깐 후면지체하지 않으시고 오실 것이다 (:37, 2:3). 주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날이 더딘 같을 있지만, 하나님은 그의 모든 백성이 회개하고 돌아오시기를 천년이 하루 같이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것이다 ( 90:4, 벧후 3:8-9). 그러나 주의 날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 24:36, 13:32), 사람들이 생각지 못하는 때에 도적같이 임할 것이다 (살전 5:2,4, 벧후 3:10, 3:3, 16:15). 예수님은 진실로 속히 오실 것을 약속하셨다 ( 22:20).

·       또한 이런 인내를 하나님이 공급하신다 ( 1:11).

ㄷ.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성도가 끝까지 인내하는 것이다 ( 24:13, 3:6,14, 2:26, 118:33). 끝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거나, 또는 우리가 세상을 떠나는 날일 것이다; 그래서 죽도록 충성하라라고 하셨다 ( 2:10).

·       끝까지 인내하게 하는 원동력이 믿음과 소망이다. 믿음과 소망은 항상 병행하는데 ( 10:23, 11:1), 믿음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소망으로 약속의 성취되는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믿음은 소망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고 ( 11:1), 소망하는 것의 내용이며 ( 10:23), 소망은 믿음을 계속 공급하고 (nourishes) 지탱하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과 소망은 모두 하나님 안에 있다 (벧전 1:21).

5.     믿는 자의 결집 (:24-25)

ㄱ.  사람이 함께 누워야 따뜻하고 삼겹 줄이 쉽게 끊어지지 않듯이 ( 4:11-12), 환난 중에 인내하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함께 수고하여야 한다.

ㄴ.  서로 돌아보라 (:24)

·       여기서 돌아보라 말은 원어에 κατανοεω (카타노에오, perceive/understand/consider)이라는 말인데, 말은νοεω (노에오, ‘살펴 보아서 마음(νους, 노우스, mind)으로 깨닫는다’)라는 말에 말을 강조하는κατά (카타)라는 말이 붙은 것이다. 예수님의 보훈 중에 속에 있는 들보를 깨달으라” ( 7:3) 이나 까마귀를 생각하라” ( 12:24) 말씀에도 쓰여진 말이다.
·       , 서로의 사정을 세세히 살펴 보고 고려하여 이해하라는 말씀이다.
·       그리하려면, 성도들의 사정에 관심을 가지고 문안하고 ( 5:47), 위해서 기도하고 ( 5:44), 어떠한 필요가 있는지 돌아보아 있다면 공급하는 섬김이 따라야 것이다 ( 12:13, 2:15-16)

ㄷ.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 (:24)

·       여기서 격려하라 말은 원어에 παροξυσμος (파록쑤스모스, provoke/sharpen alongside)라는 말이다.
·       27:17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했는데 여기에 빛나게 한다 말도 sharpen 이다.
·       이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좋은 친구는 권고도 있고( 27:9), 때로는 면책/통책도 있어서( 27:5-6), 친구가 올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해야 것이다. 그러나 면책하려면, 그것을 청종하는 귀가 있는 사람을 식별하여 지혜롭게 해야 것이다 ( 25:12, 9:7-8)
·       권고와 면책의 내용은 사랑과 선행을 권장하는데에 있다 (:24)

ㄹ.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 (:25)

·       여기서 모이기라는 말은 원어에 επισυναγωγη (에피수나고게, gathering together), επισυναγω (에피수나고, gather/collect upon the same place) 라는 동사에서 나왔다. 23:37 13:34에서 암탉이 새끼를 모음같이 예수님께서 백성을 모으려 하셨다는 데에 쓰였고, 24:31 13:27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천사들이 택하신 자들을 모을 것이라는 데에 쓰였다. ‘모이기’(meeting together)라는 뜻도 있지만, ‘모으기’(collecting or gathering together) (유사어: 추수하기)라는 뜻이 강하다.
·       예수님의 오심은 사방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로 모아 무리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 였다 ( 11:52, 10:16). 예수님과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그의 백성을 헤치는(scatters) 자이므로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이다 ( 12:30, 11:30).

·       예수님은 우리의 화평이 되셔서, 사람들 사이, 특히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었다 ( 2:14).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 중에는 아직도 이방인으로 교회에 들어온 신자들을 같은 형제로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히브리서 기자는 점을 특별히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교회 안에 남아있는 편견과 차별의 벽을 헐고, 모든 성도들이 울타리 안에 모여지기를 권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