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멜기세덱, 예수님의 모형 (:1-10) – 멜기세덱은 창 14:17-20에 출현하고, 그로부터 약 천년 후에 다윗의 시인 시 110:4에 언급되며, 다시 약 천년 후에 히브리서 기자에 의해 재조명되고 있다. 멜기세덱의 경우는 성경 말씀이 같은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수천년에 걸쳐 여러 기자를 통해 한 목적과 취지를 갖고 적혀진 것을 입증하는 단례라고 할 수 있다.
(참고: 유대인의 랍비들은 성경을 해석하는 데에 있어 다음의 방법을 썼는데, 이 방법을 히브리서 기자도 사용하여 히 7장을 기록한 것을 볼 수 있다.
첫째, 각 성경 귀절에는 네 가지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데, (ㄱ) 문자 그대로의 뜻을 가리키는 ‘페샤트’ (Peshat), (ㄴ) 암시적인 의미를 가리키는 ‘레마즈’ (Remaz), (ㄷ) 장기간에 걸쳐 신중히 검토해서 깨닫게 되는 ‘데러쉬’ (Derush), (ㄹ) 비유적이고 내면적인 의미의 ‘쏘드’(Sod)이다. 이 중에서도 ‘쏘드’를 랍비들은 가장 귀하게 여기었다.
둘째, 성서에 적혀진 말씀뿐만 아니라, 성서가 잠잠한 부분을 토대로 이론을 전개하는 것을 당연시하였다. 히브리서 기자도 이렇게 창세기의 말씀을 풀어나가고 있다.)
(1)
“의의 왕” (:1-2)
· “멜기세덱”의 이름의 뜻이 “의의 왕”이다. “멜기” 또는 “멜렉” (참: 아비멜렉 – 부왕 또는 상왕)이란 말은 “왕”이란 뜻이고, “세덱” 또는 “제덱”이란 말은 “의”, “공의”란 뜻이다.
· 바로 예수님이 의로 통치하시는 왕이시고 (사 32:1), 의로운 가지로 일어나신 왕으로서 공평과 정의를 행하시는 분이시다 (렘 23:5). 그는 또한 의/공평의 홀 (scepter of righteousness)로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히 1:8)
(2)
“평강의 왕” (:1-2)
· “살렘”이란 말의 뜻이 “평강”, “평화”이다. 멜기세덱이 살렘의 왕이었다. 살렘은 시온과 동일시된 곳으로 (시 76:2), 예루살렘의 약호라 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란 뜻이 있다.
· 평강/평화는 의의 결과이다 (롬 5:1, 히 12:11). 먼저 의로움이 있고, 그 다음이 평화이고, 그 다음이 희락이다 (롬 14:17, 5:1,11).
· 예수님이 바로 “평강의 왕”이시다 (사 9:6).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셨고 (롬 5:10),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허시고 화평이 되셨다 (엡 2:14).
(3)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1)
· 멜기세덱은 소돔과 고모라 가까이 거했지만, 참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었다.
· 멜기세덱은 구약에 유일하게 왕인 동시에 제사장인 인물로서, 이 또한 예수님의 모형이 되었다.
· 멜기세덱은 제사장으로 아브라함에게 나아오면서, 짐승의 제물을 가지고 나오지 않고,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 (창 14:18). 이는 예수님의 성찬의 떡과 포도주를 연상시키는 것인데, 성찬의 떡과 포도주는 새언약을 위해 예수님께서 자신을 제물로 드리심을 상징하는 것이다 (마 26:26-29, 막 14:22-25, 눅 22:17-20, 고전 11:23-26).
(4)
부모, 족보, 생사에 관한 언급이 없고, 항상 제사장으로 있다 (:3).
·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체로 족보와 관계되어 나오는데, 멜기세덱은 그렇지 않고, 갑자기 등장했다가 시 110:4 까지는 더 이상 언급이 없다. 히브리서 기자의 말씀을 볼 때, 이렇게 된 것은 성령께서 의도적으로 하신 것이다.
·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님의 모형으로 멜기세덱이 등장했던 것이다.
· 반대로, 레위족의 제사장직은 완전히 족보에 의한 것이었다. 족보에 이름이 없는 자는 제사장직을 수행할 수 없었다 (스 2:61-63, 느 7:63-65)
(5)
아브라함보다 뛰어난 멜기세덱 (:4-10)
· 아브라함은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다 (:4-6,8-10, 창 14:20).
n 레위 지파는 동족인 다른 지파들에게서 십일조를 받게 되었는데 (민 18:21-24), 그 이유는 (ㄱ) 가나안 땅에서 땅을 기업으로 분배받지 않았고, (ㄴ) 하나님의 회막에서 봉사하는 일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성물로 바쳐진 십일조를 레위인들에게 돌린 것이었다.
n 멜기세덱은 아브라함과 아무런 혈통관계가 없었으나(:6), 스스로에게 있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의 자격으로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았고, 더불어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던 레위에게로 부터도 십일조를 받았다 할 수 있다 (:9-10).
n 그러므로 멜기세덱의 영광이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된(롬 4:11-13) 아브라함의 영광보다 뛰어나다고 하겠다. 즉, 멜기세덱은 모든 믿는 자보다 그 영광이 뛰어나다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지만, 다윗의 주가 되시어 더 크신 영광을 가지셨다 (마 22:41-45, 참: 엡 1:20-22, 빌 2:9-11).
·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었다 (:1,6-7)
n 성경에는 세 가지의 복을 비는 것이 나온다. 첫째는 복을 비는 기도를 하는 것이고 (마 5:44) (이런 축복은 모든 성도들이 서로를 위해 하는 것이다), 둘째는 족장들이 자손들을 위해 했던 것 같이 예언적인 축복을 하는 것이고 (히 11:20-21, 창 27:27-29, 48:8-20, 49:1-28, 신 33:1-29), 셋째는 제사장으로서 백성을 축복하는 것이다 (민 6:23-27). 이 셋째의 축복에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명대로 축복한대로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축복하시겠다는 약속이 딸렸다 (민 6:27). 멜기세덱의 축복은 이 셋째의 축복이었다.
n 이와 같은 축복은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하는 것이다 (:7). 여기에 “높은”이라고 번역된 말은 κρειττωνος (kritetonos, 크리테이토노스)로서 히브리서에 1:4,
6:9, 7:7,19,22, 8:6, 10:34, 11:16,35,40, 12:24 등 12번 나오는 말인데, 그 뜻은 ‘더 훌륭한’, ‘더 좋은’, ‘유익한’, ‘효력있는’ 등이다. 이 말의 뿌리가 되는 κρατος (kratos, 크라토스) 란 말은 ‘힘’, ‘권세’의 뜻이 있다.
n 그러므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더 높은/효력있는 자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데, 이것은 물론, 예수님께서 권세를 가지신 분이신 것을 예표한다 (마 28:18).
2.
옛 제사장제도와 새 대제사장의 비교와 대조
(1)
제사장 제도와 율법의 목적
· 제사장 제도와 율법의 근본적인 목적은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19,25).
(2)
옛 제사장 제도의 불온전함
·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과 그에 따른 레위 지파 제사장 제도에 의하면,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은 하나님을 순종하여 그 율법을 지키는 것인데 (신 28장), 실제로 백성들은 그 율법을 지키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출 24:7) 지키지 못하였고, 그런 백성들을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 하기 위해서 제사장들이 속죄하는 제사를 드려야 했다. 7:11의 ‘온전함’이란 말은 5:9에 나온 말씀처럼τελειοω (teleioo, 텔레이오오, perfect/consummate) 으로 본연의 목적을 이룬다는 말인데, 옛 제도는 백성을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본연의 목적을 충분히 이루지 못했으므로, 온전하지 못했다.
·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 자체는 선하지만, 사람들이 지키지 못하므로, 결국 율법의 역할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해주고 (롬 7:7-13), 우리 스스로의 선행으로 구원을 받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서만 의롭게 됨을 지적하는 몽학선생이 된 것이었다 (갈 3:23-25).
· 이와 같이 옛 제사장 제도는 백성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목적을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고, 그래서 하나님은 새로운 제사장 제도,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제사장을 세우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11,18).
n 새 제사장은 레위 지파에서 나오지 않고, 다른 지파 곧 유다 지파에서 나오게 되었다 (:13-14).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레위 지파 외에서는 제사장을 세울 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14).
n 옛 제사장 제도는 단지 오실 예수님의 예표요 그림자였을 뿐이었다 (골 2:16-17, 히 8:5, 9:24, 10:1). 실체이신 예수님이 오심으로 그림자는 폐하기 된 것이다.
n 이와 같이 옛 제사장 제도는 폐하여 져서 끝났고, 신약시대의 목사 등은 구약의 제사장의 연속이 아니다. 이제는 모든 신자들이 다 일반 제사장이고 (벧전 2:9), 예수님 만이 홀로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중보자이신 (딤전 2:5) 특수한 대제사장이시다. 현재의 교회에서 모든 신자들은 각기 은사를 받은대로 지체로서 봉사하는 직분이 있다 (고전 12:4-31).
· 제사장 제도가 바뀐 것은 또한 병행하여 그 제사장 제도와 함께 세워진 율법도 변역하는 것을 뜻했다 (:12). 새 법은 “더 좋은 소망”을 주는 “새 언약”이다 (:19). 이 새 언약은 물론 예수님께서 피 흘리심으로 세우신 것이다 (마 26:28).
n “더 좋은 소망”이라 함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이 누리는 것을 뜻하는데, 그래서 예수님께서 구약의 많은 선지자와 임금들이 “너희 보고자 하는 것을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했다 하셨다 (눅 10:24).
n 이 새 언약은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에 관한 것으로 (롬 3:21),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에게 미치는 것이다 (롬 3:22).
(3)
새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그 직분을 더 잘 감당하시는 근거
·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이 되신 것은 하나님의 맹세로 된 것이다 (:20-21)
n 하나님께서 맹세를 안 하셔도 그 모든 말씀은 진리이고 확실한데, 그 뜻이 변치 않으심을 충분히 나타내시려 할 때 맹세로 보증하시는 것이다 (히 6:17-18).
n 그렇게 확실하게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 되신 것이다 (시 110:4).
· 예수님께서 새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 (:22).
n 22절 초반에 “이와 같이”라는 말씀은, 앞절에 하나님의 맹세에 의하여 예수님이 대제사장되심이 확실한 것 처럼, 그렇게 확실하게 라는 뜻이다.
n 예수님이 그렇게 확실한 “보증” (εγγυος, egguos, 에구오스, 담보(surety))가 되신 것이다.
n 참: 하나님께서 맹세하셔서, 예수님으로 중보자 대제사장이 되게 하시고, 예수님이 이 맹세의 보증이 되시고, 그렇게 이루신 우리의 구원과 기업의 보증이 또한 성령님이시다 (엡 1:14).
·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이 되신 것은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않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되신 것이다 (:16)
n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이란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을 세우는 기준이었다.
+ 기본적으로 아론의 자손이라는 족보가 있어야 되었다 (출 28:1-3, 스 2:61-63, 느 7:63-65)
+ 신체적인 결함이 없어야 했다 (레 21:16-23)
+ 각종 외형적인 예식에 의해 제사장으로 세워졌다 – 물, 관유, 제복, 띠, 관 등 (레 8장)
n 대조하여, 예수님은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으로, 즉, 성령으로 세우심을 입으셨다.
+ 관유를 부은 것이 아니고, 성령을 한량없이 주셨다 (요 3:34). 예수님에게는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리셨고 머무셨으며 (요 1:33, 마 3:16),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선포하셨다 (마 3:17).
+ 아론의 자손이란 자격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란 자격으로 제사장이 되신 것이다.
·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 계셔서 항상 중보하신다 (:23-25).
n 예전의 제사장들은 죽었기 때문에 제사장직을 영구적으로 행할 수 없었다 (:23).
n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히 계시므로, 영구히 제사장직을 행하고 계시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시면서 자기 자신을 대속물로 주시어 섬기려고 오셨는데 (마 20:28, 막 10:45), 승천하신 후에도 계속 중보의 섬김을 하고 계신 것이다 (:25).
n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내어 주시면서, 잠깐 대속물로 섬기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우리를 위한 중보자 대제사장으로 주신 것이다. 그 하나님께서 아들과 함께 모든 좋은 것을 항상 계속해서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는가! (롬 8:32).
n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 그를 믿는 자들을 위해 하시는 기도의 주 내용은 아마도 요 17:11,21-22에서 기도하신 것처럼,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신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일 것이다. 바로 제사장직의 목적을 이루는 기도이다.
·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으로서, 자기 자신을 단번에 제물로 드리셨다 (:26-28).
n 레위 지파 제사장들은 자기 자신들의 죄를 먼저 속량 받은 후에야 백성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다 (:27). 자기도 죄인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속량할 수 없는 것이었다.
n 또한 그들은 그 제사를 날마다 반복해야 했는데 (:27), 그 자체에 실질적인 효험이 없었기 때문에 반복한 것이었다.
n 그러나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모르시고 (고후 5:21), 죄가 없으신 분으로서 (히 4:15), 흠 없고 점 없는 온전한 제물이 되시었다 (벧전 1:18-19).
n 그리고, 예수님 제물은 “단번에” (εφαπαξ, efapax, 에파팍스, απαξ(아팍스, 단번에)의 강조형, 영원토록 단 한 번만, once
for all) 효력이 있었다.
3.
결론 (:18,25) –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시고, 또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여 날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