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This Blog

Friday, September 25, 2015

빌립보서 3장 1-11절 - 거짓 스승에 관한 경고 (1)

1. 거짓 스승들 빌립보서 3 장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미혹하게 하려는 가지 부류의 거짓 스승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첫째로는, 육체를 신뢰하는 자들이 있었다 (:2). 이들은 구원이 할례를 받은 유대인에게만 속하고, 율법을 지킴으로 얻어진다고 가르치는 자들이었다. 바울은 이들을 개들”, “행악하는 자들”, “손할례당이라 부르고 있다. 둘째로는,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다 (:19). 이들은 은혜로 구원을 얻었고 행위로 얻은 것이 아니므로, 육체의 정욕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가르치는 자들이었다 (Gnostics).


·         개들” – 개라는 것은 더러워서 거룩한 것을 받을 없으며 ( 7:6), 하늘나라 거룩한 성에 들어갈 없는 존재를 가리킨다 ( 22:15). 개를 가리키는 히브리어는כָּ֫לֶב (keh-leb)인데 남창을 뜻하기도 했고 ( 23:18), 자신을 비하에서 쓰는 말이기도 했다 (삼상 24:14, 왕하 8:13). 또한 십자가상의 예수님을 둘러싸고 물어뜯으려는, 비유컨대 교회를 파괴하려는 세력이기도 했다 ( 22:16,20).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와 같이 여겼는데 (: 15:26-27), 바울은 복음을 방해하는 유대인들이 바로 개들이라 하고 있다.

·         행악하는 자들” – 은혜로 받는 하나님의 의가 아니고, 온갖 율법의 조항을 지키어 스스로 의롭게 되려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므로, 그렇게 가르치는 것은 행악하는 것이다.

·         손할례당” (κατατομή, 카타토메, concision/mutilation) –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자손에게 하나님과의 언약의 증표로 주신 것이었다 ( 17:9-14).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단지 육체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받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사는 것이었다 ( 26:41, 10:16, 30:6, 4:4, 6:10, 9:26, 7:51, 2:25-29). 바울은 율법주의자들을 교회를 상해하는(mutilate) 자들로 여겼다.

2. 바울의 배경 –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4-6) –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에게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배경을 갖고 있었다.

. “ 만에 할례를 받고” – 생후 만에 할례를 받는 것은 하나님이 명하신 것으로 ( 17:12), 약속의 자손으로 태어난 이삭이 만에 할례를 받았고 ( 21:4), 예수님도 만에 할례를 받으셨다 ( 2:21). 반대로, 이스마엘은 13세에 할례를 받았고 ( 17:25), 전통에 따라 이스마엘족은 13세를 깨달음의 나이” (the age of daat (awareness)) 하여 할례를 받았다 한다. 만에 할례를 받았다는 것은 약속의 자손 이삭의 후예임을 가리켰다.

.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하고 얻은 특별한 이름이었다 ( 32:22-30). 이삭에게 아들 야곱과 에서가 있었으나, 둘이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야곱을 택하셔서 그의 백성으로 삼으셨고 ( 1:2-3, 9:10-13), 에서는 망령된 자라 하셨다 ( 12:16). 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이삭의 자손 중에서도 야곱, 이스라엘의 자손임을 말하고 있다.

. “베냐민의 지파요” – 베냐민은 야곱이 사랑한 아내 라헬의 소생 중의 하나로 야곱의 12 아들 만이 약속의 가나안의 에브랏(, 베들레헴) 길에서 출생하였다 ( 35:16-18). 베냐민 족속에게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이 나왔고 (삼상 9:1-2), 후에 4대왕 르호보암 때에 10지파가 다윗의 집을 배반하고 북왕국 이스라엘로 갈라질 , 남왕국 유다와 남은 지파가 베냐민 지파였다 (왕상 12:21). 바벨론에 포로되었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을 재건한 지파는 유다와 베냐민이었고 ( 4:1), 아하수에로 하만의 계략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고 부림절을 시작한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베냐민 족속이었다 ( 2:5-7). 바울이 베냐민 지파라 함은 그가 사마리아인(북왕국 10지파의 후손)이 아니고 순수한 유대사람인 것을 나타내고 있다.

. “히브리 중의 히브리인” – 바울은 이방의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났으나 ( 22:3), 히브리인인 양친 사이에서 태어나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교육을 받았다 ( 22:3). 헬라어가 공용어로 통용되던 시대에, 그는 헬라 말을 있을 아니라 ( 21:37) 히브리 말을 있는 사람이었다 ( 21:40, 22:2).

.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 바울은 바리새인의 아들로 나서 바리새인으로 자라났으며 ( 23:6),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아 열심을 내어 지킨 사람이었다 ( 22:3, 26:5). 당시 유대인 중에 바리새인은 6000 정도 밖에 되었고, 스스로를 거룩히 성별하여 율법을 지키려 했던 종교적 투사들이었다. 바울은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였고,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여 다메섹에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가던 자였다 ( 7:58, 8:1-3, 9:1-2, 1:13-14, 딤전 1:13).

3. 육신의 자랑을 해로 여김 (:7-8)

. 바울은 육신적으로 자랑할 것이 많았으나, 모든 것을 여기고 배설물 여긴다 했다.

  * “” (ζημία, zemia, damage) 라는 말은 27:21 보면, 배가 풍랑을 만나 파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바다에 던져 버려야 하는 모든 것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 것을 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는데 장애가 되는 모든 것은 그런 것에 의존함과 애착함을 끊고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 족보, 학벌, 율법 어떤 것이라고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가는 데에 장애가 되는 것은 해가 된다. 이런 모든 것에서 물리적으로 단절되라는 말씀이 아니고, 그런 것들이 그리스도에게만 신뢰를 두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대서 방해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 “배설물” (σκύβαλον, skubalon, dung/refuse) 라는 말은 몸에서 내보내는 배설물을 뜻하기도 하고, 상에서 떨어지어 개에게 던져주는 부스러기를 뜻하기도 하는 말이다. 율법주의자들을 개들이라고 바울은 (:2), 육체에 자랑은 그런 개들에게나 던져 배설물과 같다고 하고 있다 (:8).

  * 바울의 육신의 자랑에 관한 이런 생각은 과거에도 그러했고 (counted (KJV), 7), 현재에도 계속 진행형으로 그러하고 있는 것이었다 (count, 8).

. 사람들 중에 높이 여김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는 미움이 된다 하셨다 ( 16:15). 세상의 것에 마음을 만큼, 하나님에게서 마음이 멀어지기 때문이다 ( 16:13). 그래서, 천국은 마치 극히 값진 진주 또는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자가 자기의 소유를 팔아 진주, 보화를 것에 비유되었다 ( 13:44-46).

. 우리의 자랑은 육신의 어떤 것에 있어서는 되고, 오직 예수 안에서 자랑해야 한다 (고전 1:26-31).

  *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3 2천의 군사를 너무 많다 하시고 오직 300명만 남께 하셨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구원을 이룬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손이 그들을 구원하심을 알리시기 위해서였다 ( 7:2).

4. 바울이 얻으려 (:8-11) – 그리스도를 (:8, 17:3) – ‘안다 개념에는 부부가 서로를 알게 되듯이 ( 4:1), 체험적으로 안다는 뜻이 있고 연합한다는 뜻이 있다.

. 육체의 자랑을 버리고, 그리스도을 얻고 안에서 찾음 (:8-9). – 우리가 가졌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허망 뿐이었던 우리 자신의 지식, 지혜, , 영화 등등의 모든 것들을 내버리고, 그리스도에게 오면,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좋은 것을 실제로 영유하게 되는 것이다 ( 8:32).

. 율법의 의를 버리고, 하나님께로서 의를 얻음 (:9)

  *  율법의 의란, 율법을 행하는 사람은 의로 살리라는 것이다 ( 10:5). 그러나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을 사람은 하나도 없고 ( 3:20), 율법을 자랑하는 자들이 오히려 율법을 어김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 2:23), 스스로 의를 세우려 열심을 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 10:2-3).

  * 하나님께로서 오는 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9, 10:6-10).

  * 우리의 구할 것은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나라이고 ( 6:33), 사람 앞에 드러내는 우리 자신의 의가 아니다 ( 6:1).

.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고, 그의 부활의 권능을 (:10-11)

  *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한다는 것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입은 성도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 첫째로, 우리의 옛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고, 이상 죄에게 종노릇하여 몸의 사욕대로 살지 않아야 한다 ( 6:3-4,6,12-14).

              -- 둘째로, 그리스도로 인하여 받는 고난을 소망가운데 달게 받아야 한다 ( 8:16-18).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은 그와 함께 후사인 증거이고, 그와 함께 후사라면 우리 안에 그의 영이 거하시며, 영이 마지막 날에 우리로 부활하게 하실 것이다 ( 8:11).
              -- 바울이 11절에 어찌하든지 것은 이렇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삶이 쉽지 않은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궁극적 승리를 의심한 말은 아니다. 하나님의 의를 입은 자에게는 궁극적인 승리가 있다 ( 8:33-39).

  * 그리스도의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로 이어졌듯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성도에게는 부활의 영광과 영생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 (딤후 2:11-12)


. 모든 것의 결론은, 우리가 예수로 자랑하고” (:3), “ 안에서 기뻐하게” (:1)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