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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January 7, 2015

에베소서 4장 1-16절: 교회의 통일(unity)

에베소서 4 1-16: 교회의 통일(unity)

1. 부르심에 합당한 (:1-3)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부르심( 3:1) 합당한 삶을 것을 권고하면서 그리스도인의 다섯가지 미덕에 대해 얘기하는데, 이런 것을 권고할 있는 권위는 그가 주님을 위해 갇힌 자되었다는 데에 있음을 서두로 말한다. 감옥생활의 고난도 감내한 그이었기에,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과 화평에 대해 담대히 전할 있었다 (: 고후 4:7-18)

ㄱ.   겸손 (ταπεινοφροσύνη, lowliness) – 기독교 이전의 사회에서 겸손은 미덕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을 높이고 당당하고 용감한 (μεγαλοψχια, megalopsychia) 높이 여겼다. 성경에 나오는 겸손이란 (ταπεινοφροσύνη) 자체가 헬라어에 없었는데, ταπεινος 땅에 붙어서 겨우 다니는 아주 낮은, 같은 등의 뜻을 가진 말에서 겸손이란 말이 나왔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하셨고 ( 11:29), 겸손의 본을 보이셨다 ( 2:5-8). 이런 예수님의 겸손에 표준하여 , 우리는 아무리 스스로를 낮춘다 해도 부족한 것이다. 성도의 겸손은 자기 보다 남을 낫게 여기게 된다 ( 2:3).

ㄴ.   온유 (πραότης, meekness) – 온유는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하여 관대한 것을 가리킨다 ( 6:1, 딤후 2:25, 3:2, : 예수님 23:34, 스데반 7:60, 모세 - 12). 이러한 온유는 공의의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자기 백성을 신원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 ( 18:1-8). 또한 헬라어 πραος 라는 말은 제갈 물은, 길들인 동물을 묘사하는 데에도 쓰는데, 온유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는 절제하여 하나님의 통제하에 있는 사람이라 하겠다. 그래서 5:22-23에서 성령의 열매를 말씀하면서, 온유와 절제가 같이 쓰여있는 같다.

ㄷ.   오래 참음 (μακροθυμία, longsuffering) – 말은 환경적인 역경을 참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 대하여 인내하여 주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가 오래 참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가 회개하도록 오래 참으심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 2:4, 딤전 1:16, 벧전 3:20, 벧후 3:15).

ㄹ.   사랑 (αγάπη, love) – 사랑은 사랑할 없는 대상을 사랑하는 의도적인 아가페(αγάπη) 사랑인데 ( 5:7-8, 요일 4:10), 여기서는 특별히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용납해 주는 (ανέχομαι, forbearing, putting up with) 강조하고 있다.

ㅁ.    평안 (ειρήνη, peace) – 여기에서 평안은 특별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목을 가리키고 있다. 고전 14:33에서는 화평이라는 말에 질서의 뜻이 포함되기도 했다.  평안을 이루기 위해선 힘써 노력함이 필요한데 ( 12:14), 결국 이것을 이루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성령께서 교회 안에서 뜻을 합하고, 마음을 같이 하게 하신다 ( 2:1-2).

2. 교회의 통일의 근거 (:4-6).

. 구절에서 바울은 하나인 것들을 열거하는데, , 성령, 소망, , 믿음, 세례, 하나님 아버지를 언급한다.

. 결국,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은 교회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분이심에 근거한다 ( 17:11,21-22). 성부, 성자(, 2:11), 성령의 삼위 일체의 하나님은 분이시다.

.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는

  *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예수님의 몸된 교회( 1:23) 여럿일 수가 없다.

  * 소망 우리로 영생의 기업의 소망을 갖게 하셨다 (벧전 1:3-4).

  * 믿음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12:2), 그런 믿음을 선물로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 2:8),  우리 믿음의 인과 보증이 되시는 성령으로 ( 1:13-14) 말미암아 우리가 의의 소망을 기다린다 ( 5:5).

  * 세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통참하는 의미를 가진 성례가 세례이다 ( 6:3-11).

. 교회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 아버지의 통치와 임재에 근거한 것이다 (:6, 11:36, 17:28, 23:24).

3. 교회의 연합과 통일을 위해 은사를 나누어 주심 (:7-13)

. 교회의 사람에게 분량대로, 그리스도의 선물/은사를 주셨는데 (:7, 고전 12:4-6), 아무도 스스로 홀로 서지 못하고(고전 12:14-21)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신 것이다 (고전 12:25).

. 68:18에서 시편 기자는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선물(전리품) 인간에게서 받으신다 했다. 그런데, 바울은 구절에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시어 하늘 보좌에 앉으신 예수께서 ( 1:20-22)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시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고 했다 (:8) – 전리품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누듯이 ( 68:12).

  *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사 종의 형체를 입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 ( 2:7). 누가 하늘에 올라 가서 예수님을 모셔 내려 것이 아니고 ( 10:6, 30:12), 예수님이 스스로 내려 오셨다 (:9).

  * 그리고 부활, 승천하시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후에야, 성령께서 오셔서 역사하시게 되었다 ( 7:39, 16:7).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은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것이다 (:10).

. 말씀의 사역을 통해 교회를 치리하도록 주신 직분/은사 (:11). – 사도와 선지자는 초대교회 당시에만 제한된 직분이다.  복음 전하는 (evangelist) 시간적으로 제한된 직이나, 교회가 타락하거나 하여 특별한 경우에 간혹 다시 세우시는 경우도 있다.

  * 사도 -- 사도는 예수님을 직접 사람으로서 그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 1:21-22). 12사도 외에, 바울, 바나바 ( 14:4,14), 야고보 (고전 15:7, 1:19) 등이 사도로 칭해졌다. 그들의 사역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심는 일이었다.

  * 선지자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선지자도 있었으나 (아가보 11:28, 21:10-11, 빌립의 딸뜰 21:9), 선지자는 하나님의 예언/계시의 말씀을 권위있게 해석하여 교회에 전하여, 교회에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안위하는 자들이었다 (고전 14:3).

  * 복음 전하는 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디모데나 빌립 집사 ( 8:4-8,26-40) 같은 사람들이다.

  * 목사와 교사 목사는 선한 목자장이신 예수님( 10:11,14, 13:20, 벧전 2:25, 5:4) 본을 받아 지교회에서 양무리를 맡아 말씀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역자이고 (벧전 5:1-2, 딤전 4:17, 20:28), 교사는 말씀의 내용을 가르치는 자이다. 목사는 말씀의 사역을 감당하므로, 교사의 직을 겸하나, 교사이기는 하나 설교권이 없어 목사가 아닌 자도 있다. 지교회의 치리를 위해 목사와 교사는 반드시 필요한 직이다.

. 직분을 나눠 주신 목적 (:12) – 위에 언급된 말씀의 사역 통해 그리스도께서 이루시기 원하시는 것은

  * “성도를 온전케 하며” – ‘온전하다 (καταρτισμός)’ 말은 ‘(올바른 배열과 순서/질서를 갖추게 하여) 충분히 준비시킨다 뜻이다. 잘못된 자를 바로 잡는 것을 말한다는 뜻도 있다 ( 6:1). 골절된 마디를 제자리에 복귀하거나, 대립되는 당파를 다시 합치거나, 구멍 그물을 기울 ( 1:19)에도 쓰인 말이다.

  *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 ‘봉사 (διακονία)’ 섬기는 일을 말하는데, 모든 성도가 예외없이 각자의 섬김이 있어야 한다. 구약시대에는 레위지파 만이 성막에서 섬기었으나, 이제는 모든 성도가 같은 제사장이다 (벧전 2:9).

  *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 – 세운다는 (οικοδομή) 거할 처소() 짓는다 뜻이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을 가리킨다.

. 사역의 목표/궁극적 결과 (:13) – 그리스도의 충만의 장성한 분량 (full measure) 까지 이르는

  *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아는 , 믿음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13).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다 ( 17:3).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하여, 다른 것은 그에 비해 배설물과 같다 ( 3:8).

  * 우리가 거듭난 후에 계속 어린아이로 남아 있지 말고( 5:12-6:3), 예수님을 아는 지혜와 지식에 자라가야 한다 (고전 14:20, 벧후 3:18).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 하는 자가 지식에 자랄 있다 ( 7:17). 이렇게 자라는 사람은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과 교훈의 풍조에 흔들려 요동하지 않는다 (:14).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지 않은 사람이다 ( 1:6, 1:4). 여기에서 궤술(κυβεία)이란 말은 주사위를 교묘하게 조작하여 사람을 속이는 재간을 말한다.

  * 또한 사랑 안에서/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15). – 진리는 교훈과 교육에도 유익하지만, 또한 책망과 바르게 함에도 유익하다 (딤후 3:6-17). 다른 사람에게 책망이 되는 진리를 말할 특히 사랑으로 하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 모든 것의 결국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높여지시는 것이다 ( 1:18, 3:30).

  * 건강하여 성장하는 교회는 … (:16)

              -- 몸의 부분이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서 도움을 입는다.
              -- 몸의 부분이 상합하여 각각의 분량대로 역사한다.

              -- 몸의 부분이 서로의 유익을 위하여 사랑으로 일할 , 몸이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