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4장 1-16절: 교회의 통일(unity)
1. 부르심에 합당한 삶
(:1-3)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부르심(히 3:1)에 합당한 삶을 살 것을 권고하면서 그리스도인의 다섯가지 미덕에 대해 얘기하는데, 이런 것을 권고할 수 있는 권위는 그가 주님을 위해 갇힌 자되었다는 데에 있음을 서두로 말한다.
감옥생활의 고난도 감내한 그이었기에,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과 화평에 대해 담대히 전할 수 있었다 (참: 고후 4:7-18)
ㄱ.
겸손 (ταπεινοφροσύνη, lowliness)
– 기독교 이전의 사회에서 겸손은 미덕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을 높이고 당당하고 용감한 것
(μεγαλοψχια, megalopsychia)을 높이 여겼다.
성경에 나오는 겸손이란 말 (ταπεινοφροσύνη) 자체가 헬라어에 없었는데,
ταπεινος 란 땅에 붙어서 겨우 다니는 아주 낮은, 종 같은 등의 뜻을 가진 말에서 겸손이란 말이 나왔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하셨고 (마 11:29), 겸손의 본을 보이셨다 (빌 2:5-8). 이런 예수님의 겸손에 표준하여 볼 때,
우리는 아무리 스스로를 낮춘다 해도 부족한 것이다. 성도의 겸손은 자기 보다 남을 낫게 여기게 된다 (빌 2:3).
ㄴ.
온유 (πραότης, meekness) – 온유는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하여 관대한 것을 가리킨다
(갈 6:1, 딤후 2:25, 딛 3:2, 예: 예수님 – 눅 23:34, 스데반 – 행 7:60, 모세 - 민 12장). 이러한 온유는 공의의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자기 백성을 신원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 (눅 18:1-8). 또한 헬라어 πραος 라는 말은 제갈 물은, 잘 길들인 동물을 묘사하는 데에도 쓰는데,
즉 온유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는 절제하여 하나님의 통제하에 있는 사람이라 하겠다. 그래서 갈
5:22-23에서 성령의 열매를 말씀하면서, 온유와 절제가 같이 쓰여있는 것 같다.
ㄷ.
오래 참음 (μακροθυμία, longsuffering) – 이 말은 환경적인 역경을 참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 대하여 인내하여 주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가 오래 참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가 회개하도록 오래 참으심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롬 2:4, 딤전 1:16, 벧전 3:20, 벧후 3:15).
ㄹ.
사랑 (αγάπη, love) – 이 사랑은 사랑할 수 없는 대상을 사랑하는 의도적인 아가페(αγάπη) 사랑인데 (롬 5:7-8, 요일 4:10), 여기서는 특별히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용납해 주는 것(ανέχομαι, forbearing, putting up with)을 강조하고 있다.
ㅁ.
평안 (ειρήνη, peace) – 여기에서 평안은 특별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목을 가리키고 있다.
고전 14:33에서는 화평이라는 말에 질서의 뜻이 포함되기도 했다. 평안을 이루기 위해선 힘써 노력함이 필요한데
(히 12:14), 결국 이것을 이루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성령께서 교회 안에서 뜻을 합하고, 마음을 같이 하게 하신다 (빌 2:1-2).
2. 교회의 통일의 근거
(:4-6).
ㄱ.
이 구절에서 바울은 하나인 것들을 열거하는데, 몸, 성령, 소망, 주, 믿음, 세례, 하나님 아버지를 언급한다.
ㄴ.
결국,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은 교회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한 분이심에 근거한다 (요
17:11下,21-22). 성부, 성자(주, 빌 2:11), 성령의 삼위 일체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ㄷ.
한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는 …
* 한 몸 – 한 주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예수님의 몸된 교회(엡 1:23)는 여럿일 수가 없다.
* 한 소망 – 우리로 영생의 기업의 산 소망을 갖게 하셨다
(벧전 1:3-4).
* 한 믿음 –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 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고(히 12:2), 그런 믿음을 선물로 주신 분이 한 하나님이시고 (엡 2:8), 우리 믿음의 인과 보증이 되시는 한 분 성령으로
(엡 1:13-14) 말미암아 우리가 의의 소망을 기다린다 (갈 5:5).
* 한 세례 – 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통참하는 의미를 가진 성례가 세례이다 (롬 6:3-11).
ㄹ.
교회의 존재 자체가 한 분 하나님 아버지의 통치와 임재에 근거한 것이다
(:6, 롬 11:36, 행 17:28上, 렘 23:24).
3. 교회의 연합과 통일을 위해 은사를 나누어 주심 (:7-13)
ㄱ.
교회의 각 사람에게 분량대로, 그리스도의 선물/은사를 주셨는데 (:7, 고전 12:4-6), 아무도 스스로 홀로 서지 못하고(고전 12:14-21)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신 것이다 (고전 12:25).
ㄴ.
시 68:18에서 시편 기자는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선물(전리품)을 인간에게서 받으신다 했다. 그런데, 바울은 이 구절에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시어 하늘 보좌에 앉으신 예수께서
(엡 1:20-22)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시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고 했다 (:8) – 전리품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누듯이 (시 68:12).
*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사 종의 형체를 입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
(빌 2:7). 누가 하늘에 올라 가서 예수님을 모셔 내려 온 것이 아니고 (롬 10:6, 신 30:12), 예수님이 스스로 내려 오셨다 (:9).
* 그리고 부활, 승천하시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후에야,
성령께서 오셔서 역사하시게 되었다 (요 7:39, 16:7).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은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것이다
(:10).
ㄷ.
말씀의 사역을 통해 교회를 치리하도록 주신 직분/은사 (:11). – 사도와 선지자는 초대교회 당시에만 제한된 직분이다. 복음 전하는 자(evangelist)도 시간적으로 제한된 직이나, 교회가 타락하거나 하여 특별한 경우에 간혹 다시 세우시는 경우도 있다.
* 사도 -- 사도는 예수님을 직접 본 사람으로서 그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행 1:21-22). 12사도 외에,
바울, 바나바 (행 14:4,14), 야고보 (고전 15:7, 갈 1:19) 등이 사도로 칭해졌다. 그들의 사역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심는 일이었다.
* 선지자 –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선지자도 있었으나
(아가보 – 행
11:28, 21:10-11, 빌립의 네 딸뜰 – 행 21:9), 선지자는 하나님의 예언/계시의 말씀을 권위있게 해석하여 교회에 전하여, 교회에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안위하는 자들이었다 (고전 14:3).
* 복음 전하는 자 – 각 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디모데나 빌립 집사
(행 8:4-8,26-40) 같은 사람들이다.
* 목사와 교사 – 목사는 선한 목자장이신 예수님(요 10:11,14, 히 13:20, 벧전 2:25, 5:4)의 본을 받아 지교회에서 한 양무리를 맡아 말씀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역자이고 (벧전 5:1-2, 딤전 4:17, 행 20:28), 교사는 말씀의 내용을 가르치는 자이다.
목사는 말씀의 사역을 감당하므로, 교사의 직을 겸하나,
교사이기는 하나 설교권이 없어 목사가 아닌 자도 있다.
각 지교회의 치리를 위해 목사와 교사는 반드시 필요한 직이다.
ㄹ.
직분을 나눠 주신 목적 (:12) – 위에 언급된 ‘말씀의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이루시기 원하시는 것은 …
* “성도를 온전케 하며”
– ‘온전하다 (καταρτισμός)’는 말은 ‘(올바른 배열과 순서/질서를 갖추게 하여)
충분히 준비시킨다’는 뜻이다.
잘못된 자를 바로 잡는 것을 말한다는 뜻도 있다
(갈 6:1). 그 외 골절된 마디를 제자리에 복귀하거나,
대립되는 당파를 다시 합치거나, 구멍 난 그물을 기울 때 (막 1:19)에도 쓰인 말이다.
*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 ‘봉사 (διακονία)’는 섬기는 일을 말하는데, 모든 성도가 예외없이 각자의 섬김이 있어야 한다. 구약시대에는 레위지파 만이 성막에서 섬기었으나, 이제는 모든 성도가 다 ‘왕 같은 제사장’이다 (벧전 2:9).
*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 – 세운다는 말(οικοδομή)은 ‘거할 처소(집)를 짓는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
곧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을 가리킨다.
ㅁ.
사역의 목표/궁극적 결과
(:13) – 그리스도의 충만의 장성한 분량 (full measure)에 까지 이르는 것
*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아는 것,
곧 믿음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13).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다 (요 17:3).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하여,
다른 것은 그에 비해 배설물과 같다 (빌 3:8).
* 우리가 거듭난 후에 계속 어린아이로 남아 있지 말고(히 5:12-6:3), 예수님을 아는 지혜와 지식에 자라가야 한다 (고전 14:20, 벧후 3:18).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 하는 자가 그 지식에 자랄 수 있다 (요 7:17). 이렇게 자라는 사람은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과 교훈의 풍조에 흔들려 요동하지 않는다
(:14).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지 않은 사람이다 (약 1:6, 시 1:4). 여기에서 궤술(κυβεία)이란 말은 주사위를 교묘하게 조작하여 사람을 속이는 재간을 말한다.
* 또한 사랑 안에서/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15). – 진리는 교훈과 교육에도 유익하지만, 또한 책망과 바르게 함에도 유익하다 (딤후 3:6-17). 다른 사람에게 책망이 되는 진리를 말할 때 특히 사랑으로 하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 이 모든 것의 결국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높여지시는 것이다 (골 1:18, 요 3:30).
* 건강하여 성장하는 교회는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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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각 부분이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서 도움을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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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각 부분이 상합하여 각각의 분량대로 역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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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각 부분이 서로의 유익을 위하여 사랑으로 일할 때, 그 몸이 자란다.